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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불생불멸에 대한 오해-상

기자명 이제열

불생불멸은 에너지보존 법칙과 무관

큰스님·지식인들 자주 인용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불교 핵심 사상과 큰 괴리
브라만교 교리와 더 유사

한국불교 최고의 고승 가운데 한 분으로 꼽히는 어느 스님은 다음과 같은 불교관을 피력한 적이 있다.

“이것이 물과 얼음에 비유하면 알기 쉽습니다. 물은 에너지에 비유하고 얼음은 질량에 비유합니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면 물이 없어졌습니까?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을 뿐 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얼음이 물이고 물이 즉 얼음입니다. 에너지와 질량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이는 현대과학 이론인 양자론에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물이 없어진 것이 아니니 불멸이요 얼음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니 불생입니다. 모양만이 바뀔 뿐 언제나 물은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이처럼 질량 전체가 에너지로 나타나고 에너지가 질량 전체로 나타납니다. 이런 전환의 전후를 비교하면 전체가 전환하는 것이어서 조금도 증감이 없는 부증불감입니다. ”

과학 이론에 대단히 조예가 깊다고 널리 알려진 이 스님은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반야심경’의 불생불멸과 부증불감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만법은 그 본래의 성질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늘거나 줄지도 않는다는 이치를 물과 얼음과의 관계로 예를 들었다. 물과 얼음이 형태는 변해도 물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주의 모든 존재는 생겨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불생불멸과 부증불감을 두고 이 같이 해석하는 것은 이 스님만은 아니다. 불교가 현대과학 이론과 부합하는 종교임을 알리려는 많은 지식인들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반야심경’에 굉장한 과학적인 원리가 담겨 있다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로 불생불멸과 부증불감을 거론하고는 한다.

하지만 교학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견해는 불교를 제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부처님이 ‘반야심경’을 설한 이유는 인간과 우주의 근본원리를 밝히고자 설한 것이 아니라 소승의 제법을 바라보는 시각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소승의 법성을 지양하고 대승의 법성을 드러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일체법이 무아이며 무소득임을 깨닫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즉 소승에서 법을 실재라고 보는 반면 대승에서는 법은 비실재의 공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불생불멸과 부증불감을 과학과 연결시키는 분들의 주장대로라면 ‘반야심경’은 대승의 공을 설한 게 아니라 소승을 비롯한 브라만교의 유론(有論)을 설한 경전이 된다. 따라서 ‘반야심경’의 애초 의도와는 상반된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 구절과 ‘질량불변의 법칙’이니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과학이론을 엮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론은 불교 핵심교리인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와도 크게 어긋난다. ‘반야심경’에서는 애초 물질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이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얼음 역시 실체가 아니다. 물이 변해서 얼음이 되기에 물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물 역시 수소와 산소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수소와 산소를 해체시키면 물은 곧바로 사라진다. 실로 물이라고 할 만한 실체는 없는 것이다.

물질의 질량이나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다. 만약 우주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또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질량이건 에너지건 모두 조건에 의해 연기된 공성이며 무아성이다. 우주의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시간과 공간조차 생겨나지 않았을 때 무슨 질량과 에너지가 존재했겠는가. ‘반야심경’경구를 과학적 사고에 의해 해석하려는 분들의 오류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훨씬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부처님의 네 가지 자양분의 교설에 근거해 ‘반야심경’의 불생불멸과 부증불감의 말씀이 설해지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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