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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기자명 마성 스님

"법 말하는 자는 세상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경전 속 전해지는 말씀이라도
아무나 함부로 언급할 수 없어
경이 설해진 배경 이해 없으면
가르침 속 참 뜻 파악하지 못해

파키스탄의 고대 불교유적지에서 발굴한 간다라 불상.
파키스탄의 고대 불교유적지에서 발굴한 간다라 불상.

붓다께서 고향인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여 근처의 ‘큰 숲'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단다빠니(Daṇḍapāṇi)라는 삭까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황금 지팡이(suvaṇṇa- daṇḍa)를 짚고 다녔기 때문에 ‘단다빠니’로 불렸다. 단다빠니란 ‘손(pāṇi)에 지팡이(daṇḍa)를 든 자’라는 뜻이다.

그는 붓다를 찾아와 형식적인 인사말을 나누고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지팡이를 짚고 한 곁에 서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사문께서는 무엇을 설하는 분이며 무엇을 말씀하시는 분입니까?” 이 질문은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설하는 분이냐’라는 빈정거림이다. 그는 붓다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붓다께 존칭이 아닌 사문이라고 호칭하고 무례하게 질문한 단다빠니에게 붓다는 “벗이여, 나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 가운데에서, 그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고 머무는 그런 가르침을 설합니다”(MN.Ⅰ.108)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그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는다’는 붓다의 선언이다. 주석서에서는 “법을 말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MA.Ⅱ.74)로 나타난다.

단다빠니는 석가왕족으로서 데와닷따의 편이었다고 한다. 데와닷따는 붓다의 외삼촌 숩빠붓다와 부왕인 숫도다나의 여동생인 아미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데와닷따의 여동생이 ‘야소다라’이다.(DPPN.Ⅰ.1106) 그는 붓다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를 ‘누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데와닷따는 붓다와 처남매부지간이다. 주석서에서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데와닷따는 자신의 면전에 [누구라도] 오면, 여래를 비난하곤 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문 고따마는 우리 가문의 적이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또한 전륜성왕과 같은 즐거움을 향유하던 나의 누이도, 이것을 버린다고 하고는, 떠나서는 출가해 버렸다. 또한 누이의 아들이 전륜성왕과 같은 씨앗임을 알고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그는, 이것을 버리라고 하였고, 또한 어린 나이에 그를 출가시켜버렸다. 또한 싫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나도 따라서 출가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이 출가한 나를, 출가한 뒤로는 잘 살펴주지 않았다. 모임에서 [붓다가] 말하면서 또한 많은 엄한 말로써, 데와닷따가 잘못했다고 꾸짖었다”라는 등등을 말하였다.(MA.Ⅱ.73)

위 주석서에 의하면, 데와닷따는 붓다가 석가족의 배신자이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타고났으면서도 석가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출가해 버렸고, 자신의 아들 라훌라마저 출가시켜 석가족의 세속적 왕족의 계보를 단절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와닷따는 자신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붓다께 대항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와닷따가 평생 붓다를 증오한 이유는 왕족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던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강제로 출가시켜서 고생을 하게 한 것과 출가한 이후에도 붓다는 자신을 같은 왕족으로 대접해 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데와닷따의 입장에서 그를 지지했던 이가 바로 단다빠니였다. 단다빠니가 바로 야소다라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DPPN.Ⅱ.741) 이와 같이 단다빠니는 붓다의 장인이면서 라훌라의 외할아버지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시집간 딸 야소다라와 자신의 외아들인 데와닷따와 어린 외손자 라훌라의 출가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린 고독한 노인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붓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원망했던 것이다.

단다빠니가 붓다께 ‘무엇을 설하시는 분이냐’고 공격적이고 무례한 질문을 했을 때, 붓다는 ‘나는 그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즉 세속적인 잣대로 따지는 사람에게 논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때는 차라리 논쟁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주석서에서는 “여래가 ‘세상은 무상하다’고 말하면 무상하지 않다고 말하고, ‘괴로움이다, 무아이다, 부정하다’고 설하면 즐거움이라고, 자아가 있다고, 깨끗하다고 말하면서 다툰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툰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후대의 주석가들이 부가한 견해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의 본래 취지는 따지려고 온 세속의 장인과 논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경이라도 그 경이 설해진 배경, 즉 누구에게 어떤 의도로 설한 가르침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처럼 그 경이 설해진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붓다께서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이어서 붓다는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머물고 의심이 없고 후회를 잘랐고 이런저런 존재[諸有]에서 갈애가 사라진 그 바라문에게는 어떻게 해서 인식들이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말합니다.”(MN.Ⅰ.108)라고 말했다. 이것이 단다빠니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붓다의 대답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삭까 사람 단다빠니는 머리를 흔들고 혀를 축 늘어뜨리고 이마를 찌푸려 세 줄의 주름살을 짓고는 지팡이를 짚고 떠나버렸다”고 니까야에 묘사되어 있다. 그는 붓다의 말씀을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속의 입장에서 보면 단다빠니의 처지가 참으로 측은하다.

‘상윳따 니까야’(SN22:94)에서는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툰다. 법을 말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SN.Ⅲ.138)로 나타난다. 이 경전의 말씀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와 같이 경전에 설해져 있다고 해서 아무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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