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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도시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것

기자명 김순석

사람들은 안동을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20년 전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동을 찾았다. 그 당시 모든 안동 시민들은 영국 여왕의 방문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특히 하회마을 주민들은 여왕을 위하여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였고,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갈이를 시연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금년 5월, 여왕의 아들인 앤드류 왕자가 이곳을 방문하여 20년 전 여왕의 행로를 되돌아보았다. 안동은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는 서울과는 도시 형태가 많이 달라 시내 곳곳에 한옥들이 많다. 그 한옥에는 아직도 후손들이 몇 백년,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서애 류성룡 종가인 충효당이 그렇고, 학봉 김성일 종가를 비롯해서 많은 종가의 후손들이 지금도 그 한옥에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한옥에 살고 있는 집안 자녀들 가운데는 해외로, 서울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안동 한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봉정사 극락전이다. 극락전은 7세기에 세워진 국내 최고의 목조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있다. 

목조 건물인 한옥은 외관상 보기는 아름답지만 현대인들이 살기에 불편한 점들이 많다. 화장실이 그렇고, 주방이 그렇다. 이런 불편한 점들은 개량을 통해서 편리하게 고친 집들도 있고, 일부를 개조하여 살고 있는 집도 있다. 한옥들 가운데는 현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빈 집이 되어있는 경우도 많다. 자식들이 다른 도시로 나가 살게 됨에 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서 집이 비게 되는 상황도 있다. 최근 이런 한옥에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이른바 ‘한옥스테이’가 활기를 띠고 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좋고, 나쁨이 엇갈린다. 노년층은 향수에 젖을 수 있어 반갑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나 어린이들은 불편하다고 한다.

안동에서는 아직도 전통 의례가 있는 날이면 한복에 갓을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원에서 봄·가을로 제사를 모시는 향사(享祀)가 그렇고, 종가나 웬만한 가정집의 제사 또한 그렇다. 이들의 정서에는 아직도 봉제사, 접빈객이 중요한 과제이다. 봉제사란 제사를 모신다는 뜻이고, 접빈객이란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봉제사, 접빈객은 전통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이었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속에 우리의 정신과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동은 유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장 또한 유학을 주로 연구하는 곳이어서 전공이 근현대불교사인 필자로서는 초기에는 다소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다. 사업을 주관하는 입장에서 유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의든 타의든 필자가 주관하는 사업에 필진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공과 직장에서의 일에서 오는 갈등을 소화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성공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불교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일찍이 임제 선사께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어진 조건에서 주체적으로 처신하여 그 자리를 최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라는 가르침이다. 근대 유학을 공부하면서 근대 불교계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고, 상호 비교를 통하여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몇 년 전에 발간한 ‘근대유교개혁론과 유교의 정체성’은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세종도서로 선정되는 행운도 누리게 되었다. 현실의 변화는 늘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항상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가진다면 어디에 있든지 행복하지 않겠는가.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sskim@koreastudy.or.kr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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