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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 불사는 통일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계속 줄다리기를 하는 북한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관측도 다각도로 나오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큰 지향의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 ‘평화통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렇게 달아올랐을 때 어느 정도의 목표를 이뤄내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하는 초조함까지 있다. 주어진 기회에 제대로 못하면 오히려 역사는 후퇴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필자는 계속 강조하던 이야기를 또 해야 될 것 같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즉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과의 관계, 4자 구도니 6자 회담이니, 아무리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도 결국 통일의 주체가 우리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혹시라도 외국의 힘에 의해 어떤 평화정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든든한 주체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또 다른 암울한 예속관계를 낳을 뿐이다. 외국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이루어진 평화정착은 우리의 이익이 반영되기보다는 철저히 외국의 입맛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심이어야 할 우리가 소외된 평화정착이나 평화통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필자의 노파심인지는 몰라도, 북한은 지금 상당히 몸이 달아있는 상태이고, 그런 상태에서 미국, 중국과 상대를 하다 보면 결국 북한의 알맹이를 다 뽑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국제관계는 철저히 힘과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 주어야 한다. 북한이 무엇을 얼마나 주고 얻을 것을 얻을지, 자칫하면 그 과정에서 북한이 껍데기만 남는 것은 아닐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지혜롭게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적절하게 줄 것을 주고 우리의 큰 목적을 이루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남북이 확실하게 평화정착과 평화통일 목표에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확실하면 할수록 주변국들에 휘둘리는 일이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을 경계하고, 또 조심스럽게 한걸음씩 나가는 일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 또한 확고한 평화정착과 평화통일이라는 큰 지향 아래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주변의 어떤 나라도 진심으로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분단되어 있으면서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여러모로 좋다. 그 사이에 생기는 많은 이권들을 그들이 쉽게 놓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낙관적인 생각이다. 

평화정착과 평화통일을 통해 우리가 세계 역사에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으며, 또 궁극적인 이상세계의 실현에 우리의 평화통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를 확실히 알리고, 막을 수 없는 대의명분을 쌓아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법론과 과정에 대하여 논란을 벌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궁극적인 지향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를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논의를 할 자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합의한 올바른 역사의 지향이 ‘평화통일’이라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모든 민족에게 정신적인 질환과 물질적 고통을 함께 주는 괴로움의 근원에 불감증이 걸리거나, 그런 분단구조 속에서 얄팍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들의 논리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실제적으로 그런 집단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해 왔고, 그들에 의해 조장된 잘못된 의식들이 마치 망령처럼 섬뜩한 귀기를 풍기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기에 올바른 지향을 향한 우리의 다짐이 더더욱 확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이 시대 최고의 불사, 부처님이 오신다면 가장 서두르실 불사가 바로 통일불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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