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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주인 한번 잘 만났다, 제대로 만들어보자 다짐했죠”

퇴임 앞둔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

2016년 혼란 속 이사장 취임
스님들 정성으로 세워진 학교
명성 되찾겠다는 각오로 직무

동국대 불교정체성 강화 노력
교직원 모임 찾아다니며 법문
수계법회 매년 2천명에 불연

​​​​​​​용역근로자 정규직으로 전환
동국대 총장 갈등 없이 선출
의료원 혁신·발전도 이끌어

용인 반야선원을 비롯한 일체를 종단에 환원한 스님은 “이제 아름답게 죽을 준비를 하겠다”며 빙그레 웃는다. 은사 경산 스님이 그랬듯 제자 자광 스님 역시 뼛속까지 청정비구다.동국대 제공 

2016년, 동국대는 격랑에 휩싸인 나룻배였다. 한해 전 우여곡절 끝에 총장은 선출했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심각했다. 종단과 스님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불신이 깊었고, 일부 언론들도 여전히 의혹과 갈등을 부추기는 듯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더욱 치열해진 대학간 경쟁에서 동국대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해 6월21일, 동국대가 혼란의 한가운데 서있을 무렵 자광 스님은 제39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1964년 조계종 종비생 1기로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했던 인연이 돌고 돌아 학교법인의 총책임자로 다시 서게 했다. 동국대를 비롯한 모든 산하시설을 이끌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이 또한 인연이었다. 수많은 스님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탁발을 해서 세운 불교 종립대학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스님은 “동국대, 주인 한번 잘 만났다.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거듭 다짐했다. 더욱이 동국대는 1957년 산문에 든 후 하루도 잊지 않았던 은사 경산 스님(1917~1979)이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곳이었다. 스님은 은사스님이 한국불교와 교단의 가치를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음을 떠올리며 자신도 그 뒤를 따르겠다고 발원했다. 스님은 취임 직후 이렇게 말했다.

“동국대의 위상을 되살리는 길은 정관과 학칙에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인정도 아닌 원칙을 최우선에 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동국대의 동력입니다. 개인적인 재주가 아무리 많더라도 원칙에서 어긋나면 결코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2018년 5월 조계종립 동국대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로터스관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이는 스님이 군승으로 베트남전쟁과 삼청교육대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조차 놓치지 않았던 신념이었다. 또한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을 맡아 3500여 장병이 한꺼번에 법회를 볼 수 있는 논산 훈련소 법당 호국연무사 대작불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동력이기도 했다.

취임 다음날부터였다. 용인 반야선원에 상주하는 스님은 매일 오전 9시30분이면 학교에 도착했고, 가장 먼저 정각원에 들러 부처님께 참배했다. 그런 뒤 이사장실에서 업무를 보았고, 점심때면 학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공양을 했다. 오후 업무를 다 마치면 스님은 용인 반야선원으로 향했다. 특별히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스님의 일과는 늘 한결 같았다. 이는 출가자로서의 원칙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스님의 반복된 일상은 자연스레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스님다움’과 ‘주인다움’으로 비춰졌고, “이사장은 벼슬이 아니다”라는 스님의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사장으로 스님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의 정체성이었다. 세계 석학들은 불교를 대단한 종교와 철학으로 극찬하지만 정작 동국대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불교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보였다. 스님은 건학이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자긍심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았다. 스님은 불교대학 교수들을 만나 현대에 맞는 쉬운 불교입문서를 만들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동시에 동국대 서울캠퍼스와 경주캠퍼스는 물론 동국의료원, 법인 산하 초·중·고·유치원까지 수계법회를 열어 매년 2000여명이 넘는 이들에게 직접 불연(佛緣)을 맺어주었다.

스님은 교수, 직원, 학생들 모임에서 법문을 요청할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기꺼이 응했다. 때로는 먼저 교수들과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시간을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왜 위대한 진리인지, 동국대가 소장한 대장경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들려주었다.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인연법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았다.
 

학교를 위해 소리 없이 일하는 청소와 경비, 주차, 시설관리 근로자들을 항상 기억하고 격려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제가 있고, 제가 있으므로 여러분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타인과의 상관관계, 협력관계, 상호의존 속에서 서로 기대면서 사는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법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항상 모든 이에 감사하고, 겸손하며, 친절하게 생활하기 바랍니다.”

스님은 학교를 위해 소리 없이 일하는 이들을 항상 기억하고 격려했다. 설과 추석이면 청소, 경비, 주차, 시설관리 업무분야 노동자에게 명절 선물을 전달하고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서는 이들을 위한 성대한 오찬을 개최했다.

“여러분이 계셔서 교수와 학생들이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학교는 당장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학교의 주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삶의 터전인 동국대를 지키고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미세먼지가 유독 심하던 날 마스크도 없이 주차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마스크를 건네는가 하면 마스크를 대량 구입해 외부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때로는 학교를 비판하며 천막농성을 벌이는 곳을 찾아 빵을 나눠주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학생의 건강을 위해 이불을 사서 올려 보내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려는 스님의 마음은 대학측과 환경미화원이 갈등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지난해 봄 미화원들은 직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대학 측은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난색을 표명했을 때였다. 대립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자광 스님은 포용과 자비로 풀어야할 사안이라고 파악했다. 인건비 증가를 간과할 수 없겠지만 미화원들의 애환을 외면하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겼다. 스님은 대학 측에 이들을 직고용할 것을 적극 제안함으로써 미화원 97명 전원이 용역이 아닌 동국대 정규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스님은 미화원들 모두가 이제는 대학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동국대 제19대 윤성이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화합과 소통으로 동국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사장직 퇴임을 한 달여 남긴 자광 스님이 가장 보람 있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총장선출이다. 동국대는 그동안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게 패였다. 스님은 ‘총장 선거는 축제 분위기에서’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화합의 총장 선출을 이뤄낼 것을 강조했다. 법인, 학생, 교수, 직원간 4자 협의체를 구성해 총장선거 방법에 대한 논의를 투명하게 진행했고,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자 3인을 선출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또한 대학 최초로 후보자 공개토론회를 도입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후보자 소견토론회와 더불어 공개토론회를 유튜브로 실시간 생중계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그렇게 가장 여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후보들을 선출했고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었다. 전 총장과 새 총장이 화기애애하게 이·취임식을 가진 것도, 총장선거 후 아무런 잡음이 들리지 않은 것도 스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님이 산하시설을 진두지휘하면서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의료원이었다. 스님은 법인 산하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권한은 철저히 주되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섭섭할 정도로 묻겠다”고 공언했다. 어떤 경우라도 의료원이 사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고 보았고 모든 것을 ‘공모’ ‘공채’ ‘공개입찰’이라는 절차를 거쳤다. 의료원 개혁추진단을 조직해 운영하고 의료진 확충 및 구성원 복지 증진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자 의료원은 투명해졌고 의료진은 더 전문화되고 친절해졌다. 병원 법당은 확대됐고 시설도 크게 개선됐다. 법당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병실을 찾아 환자를 위로하고 기도해주었다.
 

 동국대는 물론 산하 기관까지 수계법회를 열어 구성원들에게 불연을 맺어주었다.

자광 스님은 만나는 이들마다 양한방 진료를 겸비한 동국대 의료원의 장점과 첨단의료시설을 소개했다. 그리고 “부디 건강하셔서 병원에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만약 아프면 꼭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일산병원을 방문해 전 구성원들에게 피자를 돌리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들의 고충을 충분히 들었고 곧바로 개선시키려 애썼다. 병원은 갈수록 활기차고 쾌적했으며,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가 크게 늘었다. 2016년 2191억원이었던 진료수익이 3년만에 26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동국대 의료원의 경쟁력은 더 높아졌고 불자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7월20일 임기를 마치는 스님은 지난 3년간 불심과 공심으로 동국대를 위해 불철주야 달려왔다. 그 때문일까. 동국대는 QS 세계대학평가에서 역대 최고 평가를 받은 것을 비롯해 각종 대학평가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뤘다. 또 지난해 5월엔 동국대 숙원사업으로 지상 3층, 지하 6층의 랜드마크건물 로터스관 기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스님이 이사장을 좀 더 맡기를 바라는 말들이 오고가지만 정작 스님은 손사래를 친다. 자신보다 더 잘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란다. 반야선원을 비롯한 일체를 종단에 환원한 스님은 “이제 아름답게 죽을 준비를 하겠다”며 빙그레 웃는다. 은사 경산 스님이 그랬듯 제자 자광 스님 역시 뼛속까지 청정비구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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