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1.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의 지식론 ②

대상 인식이 간접 인식인가, 있는 그대로 투영인가?

경량부, 식 형상 통해 간접 인식
실제 대상 인식하는 건 불가능
유부, 거울처럼 직접 인식 주장
식의 형상을 통한 인식은 부정

설일체유부의 무형상지식론과 경량부의 유형상지식론은 근·경·식의 연기적 관계에서 식의 어떠한 역할에 초점을 두고 제기된 문제로 이해된다. 예컨대 대상에 대한 인식이 생길 경우,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은 식의 어떠한 작용이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해서 식이 작용할 때, 식이 형상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대상의 파악에 식의 형상이 어떻게 관계되는가? 라는 문제로서 인식의 성립과정과 그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만약 식에 형상이 있다면, 대상은 식을 통해서 파악될 때, 대상은 식에 투영된 형상을 통해서 추리되고, 반면에 만약 식에 형상이 없다면, 대상은 식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세친은 ‘구사론’의 파아품에서 식의 작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식(識)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다만 식은 대상(境)과 유사하게 생겨날 뿐이다. 마치 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 과일이 종자와 유사하게 생겨나기 때문에 종자에 상응하고 종자를 재생한다고 말해지는 것과 같이, 식은 대상에 대해 어떤 작용도 실행하지 않지만, 그 대상에 유사하게 생겨나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한다고 말한다. 식의 바로 이런 유사성은 식이 그 대상의 형상(形象, ākāra)을 가진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형상은 식이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유사성으로 설명된다. 경량부의 입장에서 실재대상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는 않지만 그 대상은 의식이 재현하는 영상, 즉 형상속에 흔적을 남기고, 식은 이런 흔적을 통해서 대상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식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대상과 유사하게 생겨날 뿐인데, 즉 일상적으로 안식 등의 전5식(지각)은 대상과 유사하게 생겨나는 작용만을 하고 그 대상에 대한 종합적인 언어적 인식은 의식의 활동(추리)을 통해 생겨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점에서 형상은 식의 성격이나 대상에 가지는 그 어떤 작용성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유부는 식은 거울과 같이 대상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설명한다. 즉 식에는 형상이 없다는 입장으로, 대상에 대한 파악은 식의 작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심소(다양한 심리작용)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사실 유부는 대상은 추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지각된다는 입장을 가진다. 그런데 유부의 무형상지식론의 입장에서 대상이 지각되기 위해서는 대상은 식과 같이 생주이멸해야하고, 이때 식은 동반되는 심소(慧)에 의해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이처럼 유부의 지각론이나 그 이해방식에는 어떤 일관된 논리가 있다. 시간적으로는 현재를 기준으로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 내에서 작용을 한다. 즉 과거·미래의 다르마도 현재적인  다르마의 작용(접촉)을 받지 않으면 그냥 과거와 미래에 잠세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유부의 입장은 무형상지식론과 결부될 때 매우 합리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부는 식의 형상을 인정하지 않고 마음작용을 심소법의 다양한 심리현상들로 해체하여 식의 형상을 대체하고 있다. 이때 다양한 심리현상들은 마음과 함께 동반되는 심리적 현상(심소)의 영역이다. 

사실 유부의 입장에서 삼사의 화합에 의한 촉이 생기지 않으면 다양한 심리현상들, 즉 심소법은 별다른 작용도 없이 잠세태로서 존재하게 된다. 식이 생기더라도 촉이 생기지 않으면 여러 심소법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즉 인식의 구조상, 촉이 생기하지 않으면, 고통과 윤회와 논쟁의 원인이 되는 부정적인 여러 심소법도 생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유부가 촉을 삼사와 별개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는 의도가 있다. 이는 유부의 지식론이나 독특한 인과론 등과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니는 것이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