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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불교는 어떻게 급성장했나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7.01 13:34
  • 수정 2021.08.04 16:56
  • 호수 1495
  • 댓글 3

고승·재가불자·교단 큰 역할
대불련·대불청도 위상 높여
불자 자부심 가져도 좋을 듯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상하다. 벌써 지도상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존속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틈바구니에서 5000년 동안 망하지 않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세계사의 기적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영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의 말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숭유억불의 500년 암흑기를 빠져나온 불교계가 격동의 시기에 온갖 정치적 탄압과 편향을 딛고 급성장한 것은 기적이다.

일제강점기 정확한 종교인구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1930년대까지도 불자수는 30만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천도교와 보천교가 300~600만명에 이른다는 당시 자료를 감안하면 불교계는 대단히 왜소했다. 그러나 불교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며 1960년 128만9000명(‘서울연감 통계자료’), 1985년 국가차원의 첫 종교인구 통계에서는 불자가 805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면 어떻게 불자수가 급증할 수 있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고승들의 역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경허, 용성, 봉려관, 학명, 만공, 석전, 한암, 만암, 만해, 효봉, 동산, 춘성, 운허, 금오, 일엽, 전강, 청담, 구산, 성철, 서옹, 월산, 탄허, 방울, 청화, 광덕, 숭산, 일타, 무진장, 법정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들이 출현했다. 이들 스님은 수행, 학문, 계율, 저술, 사회활동 등으로 불교의 이미지를 바꾸고 위상을 크게 높였다.

재가불자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았다. 불후의 명저 ‘조선불교통사’를 집필한 석학 이능화를 비롯해 양건식, 이광수, 장경호, 전진한, 김기추, 이종익, 김영한, 이한상, 황산덕, 서돈각, 김미희, 이기영, 김종서, 장상문, 김부전, 서경수, 박성배, 고익진, 박완일, 윤용숙, 목정배, 이용부 등 숱한 재가불자들이 지극한 신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불교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이들의 활동은 재가자도 엄연한 불교의 주체임과 더불어 불교가 현대문명에 가장 걸맞은 사상임을 보여주었다.

불교종단의 역할도 지대했다. 비록 내부 갈등과 불미스런 일이 많았지만 포교, 교육, 복지, 문화, 사회참여, 성보의 국가문화재 지정 등 다방면에서 불교의 영향력 확대는 종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등 많은 종단들은 각자 종지종통에 맞춰 내실을 기하고 신도들의 결속력을 강화해나갔다. 1980년대까지도 문공부(문체부) 사무관이 총무원장을 상대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장관과 당대표가 종단을 찾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한 것도 종단의 노력이 컸다.

대한불교청년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활동도 불교발전의 큰 축이었다. 이들 연합단체는 젊은 불자들의 구심점으로 각 지역과 대학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신행, 봉사, 수행, 포교는 물론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특히 대불련에서 불교를 접한 젊은이들이 출가하고 훗날 직장 신행단체를 결성해 이끌기도 했다. 그 배경에 불자교수들과 재가법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복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많은 이들의 의지처가 됐던 평범한 스님들과 사찰의 역할도 간과돼선 안 된다. 또한 맹목적 믿음을 강조하는 대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이 많다는 불교의 특성, 뛰어난 불교문화유산이 많은 점도 대중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법륜, 혜민, 정목, 마가 스님과 같이 사회적으로도 저명한 스님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불교를 표방하는 많은 단체들과 신도회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만 지극한 신심을 갖춘 재가 지식인이 크게 줄었고 대불청과 대불련이 위축된 것이 눈에 띄는 변화다.
 

이재형 국장

그렇더라도 이런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불교계는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히 좋을 듯싶다. 채찍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우리 불교사에 대한 포용과 이해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mitra@beopbo.com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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