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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수행(修行)

기자명 현진 스님

해탈 이르기 위해 행하는 모든 노력을 의미

브라흐만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브라만교의 ‘요가’와 같은 뜻
수행은 곧 ‘반복하다’는 의미

때는, 당시 새로 나왔다는 ‘딱풀’이 이야기에 등장하고 삼청교육대가 언급되니 1980년대 초반에 해당한다. 이는 지방의 어느 도시에 있는 성당에서 있었다는 일로 한 가톨릭신자가 본당 주임신부님에게 입은 은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신혼 초의 한 젊은이가 의협심에 친구를 돕다가 삼청교육대까지 한 차례 다녀온 뒤로는, 그렇잖아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나서 동네 작은 극장에서 허드렛일이나 거들며 울분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집안 살림을 책임지게 된 그의 아내는 항상 시장 난전에서 하루를 거의 보내다시피 하였지만, 일요일에는 빠짐없이 성당을 찾는 독실한 가톨릭교인이었다.

그날도 그의 아내는 성당을 겉으로만 맴도는 남편에게 어린 아들을 맡긴 채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성당과 인접한 큰길에서 우연히 친구와 마주친 그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어린 아들이 차에 치일 뻔한 일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마침 길을 건너려던 주임신부님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는데, 다만 아이를 안고 넘어지는 바람에 신부님은 오른팔에 제법 심한 찰과상을 입고 말았다.

“신부님! 말씀하시는 무엇이건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4대 독자인 제 아들을 구해주셨으니, 평생 성당의 신부님 밑에서 노역을 하라고 해도 그리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일은 힘도 안 들고 시간도 안 들며 돈도 안 드는 일인데, 내 말대로 하겠는가? 그저 누구에게나 무엇을 건네받으면 소리 내어 ‘고맙습니다!’라고만 말하게나. 심지어 자네 안사람에게서 식사 때 밥그릇을 건네받더라도. 매일, 하루도 빼먹지 말고!”

교우들과 늘 섞이지 못하던 그를 눈여겨 봐오던 신부님이 이렇게 말하자 그는 흔쾌히 말씀대로 따르겠노라고 맹세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 당시의 상황이나 무엇보다 그 자신의 삐뚤어진 마음상태로 그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엔 거의 모기소리 정도로 시작된 신부님과의 약속은 두 해가 지나자 그의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새로 나온 딱풀을 하나 사달라고 하자 퇴근길에 문방구를 들르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딱풀을 건네받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또렷이 외치는 자신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분명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 또렷해진 말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임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딱풀을 손에 쥐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돌아본 그는 자신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변한 것을, 그것도 밝게 변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범어인 요가(yoga)는 동사 ‘결합하다(√yuj)’에서 온 말이다. 브라만교에서 절대상태인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든 과정을 ‘요가’라 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해탈에 가닿기 위해 행하는 모든 노력을 ‘수행’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본래 동사 유즈(√yuj)는 황소에 멍에를 지우는 것을 가리킨다. 그냥 나무토막 하나를 소 어깨에 덜렁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황소의 어깨에 맞추어 깎고 또 맞추어 깎음을 반복하여 결국 완벽하게 맞추어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요가’가 바로 ‘수행’인 셈이다.

귓전에 들리면 그저 어렵게 만 느껴지는 ‘수행’이란 단어가 심지어 불교 특유의 색채를 모두 빼버리더라도 온전히 살아남아있을 수 있는, 평범할 수 있기에 더욱 귀한 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반복(反復)이란 말과 바꿔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행’을 위해 많은 경전에서 중언부언해놓았는데,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혼란스러운지도 모른다. 그저 반복되는 ‘감사합니다!’란 말 한 마디로도 충분할 수 있는 것을….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95호 / 2019년 7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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