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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자필반(去者必返)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

10년도 넘은 일이다. 법보신문은 신미대사와 한글창제를 둘러싼 최초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학자들이 신미대사의 역할을 주목하고 역사적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최근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신분과 종교를 넘은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의 협업’이라는 모티브로 한글창제에 얽힌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 주역이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은 많다. ‘복천암사적기’에는 세종이 신미대사에게 한글창제와 관련 학자들을 보내 범어를 가르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현의 ‘용재총화’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한글이 범어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신미대사 집안인 영산 김씨 족보에는 스님이 집현전 학자였다고 기록돼 있고, 효령대군 문집이나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스님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

한글창제 이후 많은 불경이 언해된 것도 스님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세종은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올렸다. ‘나라를 도와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친 존귀한 분’라는 의미다. 한글창제와 연관된 법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파편처럼 남겨진 기록들은 일관되게 신미대사가 한글창제 주역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신미대사는 드러나지 않아야 할 존재였다. 집현전 학자 최만리, 정창손, 하위지 같은 이들은 한글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는 것도 모자라, 세종의 면전에서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기에 스님의 흔적들은 진실을 품은 채 퍼즐처럼 흩어져 시대인연이 도래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이 있다.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신미대사의 행적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 한글창제를 주도했던 신미대사의 삶이 영화가 아닌 역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496호 / 2019년 7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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