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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총장이 죽어 소가 됐다니요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7.15 13:41
  • 수정 2019.07.16 09:35
  • 호수 1497
  • 댓글 6

금강경 수행 이끄는 저자
특정 불교인물 폄하 논란
유족들, 판매중지 등 요구

근대불교사를 전공한 학자로부터 몇 장의 사진을 전해 받은 것은 6월 말이다. 2018년 출판된 책 내용 일부를 찍은 사진이었다. 제목이 눈에 익었다. 불서총판 운주사가 매주 집계하는 ‘불교서적 베스트 10’에서 늘 상위권에 머무는 책이었다. 저자도 불교계에는 널리 알려진 인사였다. 독립운동가, 수행자, 정치인, 교육자로 우리 근대불교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백성욱(1897~1981) 박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오랜 세월 ‘금강경’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했었고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음도 잘 알았기에 그는 사려 깊고 자비심이 많은 학자 출신의 수행자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가 쓴 책이 뭐가 문제라는 걸까. 내용을 살펴보니 충격적이었다. 특정인에 대한 서술이 험담 수준에 가까웠다. 비난의 대상은 백성욱 박사와 동시대인으로 해방 후 장관과 동국대 총장도 지낸 분이었다. 만해 스님의 제자로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반제국주의대회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했고, 2006년 그 연설문이 발견돼 화제가 됐었다.

책에서는 K라고 지칭했지만 ‘L대통령 시절 장관과 대학 총장을 한 적이 있다’ ‘독립운동가요 사회명사요 독실한 불자’라고 언급해 근대불교에 관심 있다면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소의 마음을 연습하여 소가 된 경우’로 시작됐다. ‘현실에만 만족하는 어두운 마음이 바로 소의 마음인데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가진 한, 비록 세상에서는 훌륭한 자선사업가요, 신심 깊은 불자라 하여도 내생에 사람 몸을 받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고 썼다. 이어 K는 장관과 대학 총장의 자리까지 얻게 됐고 ‘이제 이만하면 나의 모든 소원은 다 이루었다’며 만족했다는 것이고, 그 만족하는 마음이 치심(痴心)이라는 큰 독이 됐다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저자는 ‘(K가)화장실에 앉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희희낙락하던 순간 갑자기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다’며 눈 밝은 이(백성욱)가 그의 후생을 보았는데 ‘그는 극락왕생을 하지 못하였으며 사람 몸을 받지도 못하였다’고 썼다.

책 내용으로만 보면 K라는 인물은 어리석었기에 극락왕생은커녕 소로 태어났다는 얘기다. 그분이 소로 태어난 이유도 적혀있었다. 독립운동을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게 아니라 경쟁자를 흉내 낸 것이며 유럽 유학도 경쟁자를 샘 낸 것이며, 장관도 대학총장도 교육 열정이 아니라 경쟁자에 대한 시샘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시샘의 마음이 아니라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으로 하였다면 어찌 후생에 그런 축생의 몸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라며 그가 소로 태어났음을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경쟁자는 저자의 스승인 백성욱 박사임은 물론이다.

오랜 세월 수행하고 대학교수까지 지낸 분의 글이라고는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분이 정말 소로 태어났는지, 화장실에서 희희낙락했는지 어떻게 단언하며, 시샘 때문에 독립운동도, 유학도, 장관도, 총장도 했다는 주장을 입증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기에 저자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책 내용을 알려온 학자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백성욱 박사도, 그분도 우리 불교계가 선양해야 할 분들인데 이토록 모질게 깎아내리느냐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한 유족의 상심도 컸다. 유족 대표는 저자와 출판사측에 배포 중단 및 회수, 공개사과, 재출간시 해당 내용 삭제를 요구했다.
 

이재형 국장

백성욱 박사는 공경심 내는 마음 연습을 늘 강조했고 그럴 때 아상이 제거되고 배려심이 생긴다고 했다. 저자 또한 복지재단과 무료급식원을 운영하며 공경과 하심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논란이 된 책 내용은 공경과 하심과는 멀어 보인다. 이제라도 지금껏 갈고닦은 금강의 지혜로 여법하고 원만히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mitra@beopbo.com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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