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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아라한(阿羅漢)

기자명 현진 스님

공양 올릴 가치 있는 훌륭한 수행자 지칭

브라만교서 유래한 말이지만
불교선 수행계위 가장 윗자리
부처님과 동등한 해탈 성취자
나한의 청빈함은 무소유 상징

개항기 중국에서 미국의 국명을 한문으로 ‘미이견(美利堅)’이라 하였는데, 이는 America의 몇 가지 음역 가운데 하나로서 ‘­me­’ 부분에 강세가 들어간 까닭에 첫 음이 생략된 것이다. 부파불교에서 최고의 수행자로 여기는 아라한(arhat)도 이와 유사한 경우로서, 전체가 음역된 것이 아라한(阿羅漢)이요 첫 음이 생략된 것이 나한(羅漢)이다. 그런데 무턱대고 첫 음을 생략하면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으니,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ābha)의 경우 ‘아미타(amita­, 가늠할 수 없는)’에서 ‘미타(mita­, 가늠할 수 있는)’가 되면 완전히 상반된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실적으론 ‘미타전’ 혹은 ‘미타불’로 사용되고 있긴 하다.

명사 아라한(arhat)은 동사 아르흐(√arh, ~할 가치가 있다)에서 온 말이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도, 반드시 특정한 수행과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훌륭한 수행자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동사 ‘아르흐’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상태를 지정하지 않은 채 ‘~할 가치가 있다’라고만 되어 있지만, 기실은 ‘공양을 올릴 가치가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브라만교 사성계급의 최상위 사제계급인 브라만이 공부하는 학생기(學生期)와 집안살림을 하는 가주기(家住期)를 원만히 마치고 모든 것을 이제 가주기에 정착한 아들에게 물려주고는 옷 몇 벌과 물통 등 최소한의 생필품만 챙겨 숲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이를 산림기(山林期)라 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브라흐만과의 합일을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이는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한 그를 ‘아라한’이라 하니, 산림기의 아라한에게 긴요하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존경도 아니요 이미 내려놓은 부귀영화도 아닌, 수행을 위해 하루하루의 목숨을 이어갈 하루 한 끼의 먹거리였기에 자연스럽게 ‘아라한’은 ‘공양을 올릴 가치가 있는 이’를 의미하게 되었을 것이다.

불교에선 아라한이란 명칭을 받아들여 수행계위의 가장 윗자리에 놓으며 그 의미를 살적(殺賊, 모든 번뇌의 도적을 물리침) 응공(應供, 하늘과 인간의 공양을 받을 만 함) 불생(不生,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음) 등의 셋으로 일컫고 있는데, 어원학적으로 따지면 원래의 기본의미는 응공이요 나머지 둘은 부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라한’은 또한 여래를 가리키는 열 가지 명호 가운데 하나이니, 단순히 깨달음을 이룬 붓다의 바로 아래 계위를 가리키는 것만도 아니다. 부처님이 계셨을 때는 제자가 해탈을 성취하였다고 하여 부처님과 동등하게 붓다로 일컬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런 이를 아라한이라 일컫는다 하였다.

‘보살’은 대승불교를 대표하고 ‘아라한’은 부파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보살이란 명칭은 어원학적으로 ‘이미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라 해석될 수 있으며, 아라한이란 명칭 또한 붓다의 별칭으로도 사용되므로 이미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로 보기에 별 무리가 없다. 단지 여러 보살상과 나한상을 볼 때 외형적으로 드러난 모습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풍만한 자태에 화려한 의상 위로 수많은 보석으로 치장된 보살님은 몇 겹으로 주름진 턱선 만 보아도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비쩍 마른 몸매에 허름한 천으로 된 옷을 걸친 채 기껏해야 불자(拂子)나 이런저런 수행도구를 들고 있을 뿐인 나한님은 치장용 보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모습으로 계신다.

중생을 위하신다며 왠 사치를, 깨달음을 얻으셨다며 왜 저리 궁핍한 모습을, 그러나 불교의 모든 모습들이 모두 상징성을 지닌 것이니, 보살님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은 중생을 위해 베풀 법을 넉넉히 갖추고 계신 모습이요, 나한님의 청빈한 모습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소유를 그려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97호 / 2019년 7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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