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겸손은 악덕입니다”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7.22 10:57
  • 수정 2019.10.12 06:38
  • 호수 1498
  • 댓글 4

김호성 교수 30년 넘게 포교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 이용해
사찰·사람들 찾아다니며 ‘권진’

얼마 전 김호성 동국대 교수로부터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동국대출판부에서 펴낸 ‘처음 만난 관무량수경’이었다. 김 교수가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보완한 것으로 ‘관무량수경’에 대한 첫 해설서라 할 수 있다. 책을 받아들고 몇 장 넘기다 머리말의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우리 정토문(淨土門)의 사람들에게는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권진은 겸손해서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진(勸進)은 불교학자인 김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이다. 극락왕생을 위해선 나 혼자만 인과의 법칙을 믿고 경전을 독송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다른 행자들을 격려하여 함께 극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30년이 넘도록 전법을 위해 포교당을 운영하고 신행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논문도 쓰고, 시도 쓰고,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하고, 세미나도 열고, 독서회도 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관심 영역도 선불교, 대승불교, 인도불교, 일본불교를 거쳐 이제는 정토불교로 최종 회향하는 모습이다.

김 교수는 ‘타방정토, 칭명염불, 타력신심’이라는 정토의 세 기둥을 믿는다. 기나긴 불교 역사동안 수없이 많은 이들이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신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서방정토에 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오늘날에 “나무아미타불, 염불합시다”라며 늘 권진하는 김 교수가 흔치 않은 학자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촌음을 아껴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권진한다는 점에서 김 교수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김 교수가 권진을 강조하는 이유가 꼭 정토불교 때문은 아니다. 선을 하는 이들은 선을, 진언을 하는 이들은 진언을 권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불교를 공부하든 수행하든 다 ‘권진을 하면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두 사람이 한길을 가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설하라”고 했던 부처님의 전도선언과도 맞닿아 있다.

김 교수는 불교계가 전법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 잘 안 되는 이유를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上求菩提下化衆生)’는 대승의 슬로건에서 찾는다. 자신의 깨달음[上求菩提]과 중생의 제도[下化衆生]가 서로 방향이 달랐기에 먼저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해 포교를 등한시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예로부터 정토불교는 권진의 불교라 할 정도로 능동적이다. 김 교수가 그렇다. 누군가 “불교는 원래 조용한 종교다. 남이 믿든지 말든지 다 지켜보고 본인의 선택을 존중한다. 권진하는 것은 시끄러운 것이며, 불교답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자꾸 떠올리고 얘기하게 되듯 정말로 불교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권진하지 말라고 해도 권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불자와 포교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을 넘어 주변에 적극 알려야 비로소 불자라는 것이다.

권진하려면 자신을 한없이 낮춰야한다. 잘난 마음, 깔보는 마음이 있으면서 권진하기는 어렵다. 신라의 원효 스님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법을 전했던 것과 비슷하다. 김 교수는 지금껏 자동차는커녕 운전면허조차 없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크고 작은 사찰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난다. 하염없이 자신을 낮추며 “나무아미타불”을 권진한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는 세상 누구 못지않게 ‘겸손’하다.
 

이재형 국장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가 팔만대장경 모두의 무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김 교수는 학문과 신앙을 통해 정토불교의 진면모를 드러내려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실 앞 게시판에 붙여놓은 신란 스님의 말씀이 곧 김 교수의 마음인 것 같았다.

‘그저 부처님 은혜가 깊음만을 생각할 뿐 남들의 조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唯念佛恩心 不恥人倫嘲).’

mitra@beopbo.com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