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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일체유심조

기자명 이제열

“마음이 다 만든다는 뜻 아니에요”

일체유심조는 화엄경 사구게
‘마음이 만물 창조’ 뜻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만물 구성해간다는 의미

서울 인사동에는 행인들에게 가훈이 될 만한 글을 붓으로 써 무료로 나눠주는 분이 있다. 글 내용도 다양해서 성인이나 철인들의 말씀, 고사성어, 그밖에 삶의 귀감이 될 만한 내용들을 골라서 써준다. 그중에는 부처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날에도 나는 그분이 글을 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육십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그분에게 다가가 부처님 말씀 가운데에 좋아하시는 글이 있으면 한 장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분은 흔쾌히 아주머니의 부탁을 승낙하고 숙달된 솜씨로 불경 한 구절을 한자로 써내려갔다. 가만히 보니 ‘화엄경’의 ‘보살설게품’에 나오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내용이다.

글을 받아든 아주머니는 그분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분은 아주머니에게 “이건 ‘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말씀인데 모든 건 마음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돈 만원을 내놓으며 “소중한 말씀인데 공짜로 받을 수 없고 종이 값이라도 드려야지요.” 하면서 글을 소중히 챙겨서 떠나갔다.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면 글씨를 쓰시는 분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글귀를 쓰면서도 불경 구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해석해주는 모습은 불교인으로써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글 쓰는 분의 말과 달리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체유심조 경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부처님 말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경구가 불교의 최상승 가르침인 ‘화엄경’의 사구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그 의미도 매우 지엽적으로 이해하거나 종종 부처님이 설하신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하는 일도 있다. 특히 일체유심조를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드니 항상 좋은 마음을 일으키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거나 우주만물을 만든 창조 주체로 여기기도 한다. 일종의 긍정심리를 만들어주는 시각으로 경구를 해석하는 것이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 사구게의 한 구절로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내용 속에 들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에 대해 알고 싶으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할 것이니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것이니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법계성이란 일체만유의 근본 성품인 진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면 법계의 성품을 보아야 하고 법계의 성품을 보려면 자신의 마음이 세상만물을 지었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체유심조란 마음이 세상만물을 창조했다는 뜻이 아니고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만물들을 구성해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여기 붉은 색의 연꽃이 있다면 마음이 눈앞의 물자체인 연꽃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꽃에 마음이 개입하여 명칭을 짓고 개념을 짓고 가치를 지었다는 의미이다. 연꽃이라는 이름도, 붉다는 색깔도, 줄기·잎·꽃이라는 구분도 연꽃은 저렇게 생긴 것이라는 개념도 모두 마음이 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꽃은 내가 보는 것처럼 고정불변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다. 바라보는 중생의 마음에 따라 천만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연꽃은 공하여 실체가 없는 것인데 오로지 마음이 정해 놓고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한밤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물이라 구역질을 한 것은 마음이 물에 대해 깨끗하다 더럽다고 일으킨 분별이지 물에 있지 않다.
눈앞에 전개된 모든 사물과 일들이 마음의 조작임을 알면 부처님을 알고 진리를 보게 된다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8호 / 2019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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