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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진목공의 꿈

기자명 김정빈

“꿈은 꿈일뿐 일체는 실제와 사실로써 고찰해야”

닷새 자면서 꾼 목공의 꿈은
잡은 암꿩 돌로 변했다는 것
그 꿩 위해 사당 세워 제향도
목공후 400년뒤 후한 세우니
사람들은 암꿩 때문이라 생각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춘추시대 진목공(秦穆公)이 서융(西戎)을 토벌한 다음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다. 목공은 그 연회에서 대취한 다음 잠이 들었는데, 닷새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목공은 “참으로 괴이하구나!”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자 앵(罌)이 “부군께서는 닷새를 주무셨나이다”라고 말하자 목공이 말했다.

“내가 꿈에 한 부인을 보았는데, 살빛이 백설 같았으며 손에는 천부(天符)를 들고 있었다. 모양이 단정하여 궁궐의 비빈(妃嬪)처럼 보이는 부인은 나에게 상제(上帝)의 명을 받들고 왔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갔는데, 홀연히 몸이 구름 속으로 올라가서 한정 없이 떠다니다가 한 궁궐에 이르렀다.

단청이 찬란하고 옥계들이 9척 높이나 되었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구슬발이 늘어져 있었다. 부인이 시키는 대로 층계 아래에서 절을 하자, 구슬발이 올라가더니 황금 기둥이 보였고, 벽은 눈부셨다. 옥좌에는 면류관을 쓴 왕자가 기대어 앉아 있고, 좌우에는 신하들이 시립해 있었다. 왕자가 ‘사례(賜禮)!’라고 하자 시녀가 푸른 옥잔에 술을 부어 나에게 주었다. 술은 비할 바 없이 향기로웠다. 당상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임호(任好)는 들어라. 너는 진란(晉亂)을 평정하라!’

이 말을 두 번 들은 다음, 나는 부인의 인도를 받아 궁궐 밖으로 나왔다. 내가 부인의 이름을 물었더니 부인이 대답했다.

‘첩의 이름은 보부인(寶夫人)입니다. 태백산 서쪽 기슭에 살고 있는데, 군의 영지지요. 첩의 지아비는 섭군(葉君)이며, 저와 멀리 떨어져 남양(南陽)에 삽니다. 섭군은 1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첩을 찾아옵니다. 첩을 위해 사당을 세워주십시오. 그러면 군이 패권을 잡아 이름을 만세에 전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나라에 무슨 환란이 있소?’라고 물었더니 보부인은 ‘그것은 천기(天機)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닭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마치 뇌성벽력처럼 컸다. 그래서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깬 것이다.”

목공은 내사(內史) 요(寥)에게 꿈을 해몽하게 했더니, 그가 말했다.

“선군(先君)이신 문공(文公) 때 진창(陳倉)에 사는 어떤 사람이 땅속에서 이상한 생물체를 하나 얻었는데, 모양은 퉁퉁한 주머니 같고, 빛은 황백이며, 꼬리는 짧고, 발이 많았으며, 주둥이는 뾰족했다고 합니다. 진창 사람이 그것을 임금께 바치려고 들고 오다가 도중에 동자 둘을 만났습니다. 동자들은 손바닥을 치고 웃으며 그 물건을 향해 ‘너는 죽은 사람을 학대하더니 지금은 산 사람 속에 있구나!’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창 사람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 물건은 위(猬)라고 하는 것으로 땅속에서 죽은 사람의 뇌수를 파먹습니다.’ 그러자 위도 지지 않고 진창 사람에게 ‘이 두 동자는 들꿩의 정(精)으로, 수컷을 얻는 자는 왕이 되고, 암컷을 얻는 자는 패(覇)가 됩니다.’ 이에 진창인이 위를 버려두고 동자들을 쫓았는데, 그들은 홀연히 꿩으로 변해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일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기록을 잘 보관하고 있사오니, 주군께서는 살펴보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목공은 요를 시켜 보관하고 있던 역사서를 가져오게 하여 읽어보니 요가 말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목공은 자신이 꾼 꿈을 역사 기록에 추가하여 잘 보관할 것을 지시했다. 얼마 후, 목공은 꿈에서 본 보부인이 살고 있다는 태백산으로 사냥을 떠났다. 목공이 서쪽으로 가는 도중에 가까운 곳의 진창 사람이 암꿩 한 마리를 그물로 잡았는데, 전신이 옥색이고, 흠이 없었으며, 광채가 났다. 사냥꾼이 보는 사이에 살아 있던 꿩이 돌로 변해버렸다. 사냥꾼이 그 꿩을 목공에게 바치자 요가 말했다.

“이것이 보부인입니다. 암꿩을 얻는 이는 패(覇)가 된다 하였으니, 주군께 좋은 징조입니다. 진창에 사당을 지어 보부인을 위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공은 크게 기뻐하며 돌꿩을 난초탕에 목욕시키고, 비단 이불을 덮어 옥함에 담았다. 그러고는 산위에 사당을 지어 이름을 보부인사(寶夫人祠)라 하고, 진창산은 보계산(普鷄山)이라 부르게 했다. 또, 그는 보부인사에 담당관을 두어 춘추로 두 번 제향을 올리게 했는데,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산 위에서 닭 우는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보부인사 근처에서는 1년이나 2년마다 붉은 광채가 십여 리나 퍼지고, 뇌성이 은은히 들렸다. 사람들은 그때가 섭군, 즉 보부인의 남편인 수꿩이 보부인을 만나러 오는 때였다고 믿었다.

또 사람들은, 목공으로부터 400년 후에 황족인 유수(劉秀)가 남양에서 군대를 일으켜 일시적으로 무너진 전한(前漢)을 대체하는 후한(後漢)을 일으킴으로써 광무제(光武帝)가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수꿩을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목공이 꿈에서 본 것은 개인사니까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일어난 여러 일들까지 무시하기는 어렵다. 예전의 고사에는 이런 신이한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이한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례들이 과학적으로 해명되어 신이한 일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오래 전 불상에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고 주장하여 일부 불제자들을 들뜨게 한 스님이 있었다. 하지만 그분이 우담바라꽃이라고 주장한 것은 알고 보니 곰팡이었다. 필자는 예전에 제주도의 한 법회에 참석했다가 많은 신도들이 사원 안에 여기저기 사리가 생겨났다며 사리 찾기에 열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얇은 종이에 싸여 김을 보호하는 작은 구슬 모양을 한 흰 제습제였다.

세상에는 분명히 아직은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신이한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종교적인 심오한 비의(秘義)로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과학이 발달해가면서 그런 신이한 일들의 수는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런 신이한 현상이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대인들의 인식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 보면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신이한 쪽으로 가 아니라 실제와 사실의 면에서 고찰하신 분이었다. 인간을 경험 가능한 색, 수, 상, 행, 식으로써 해명하신 것이 그 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불교에는 아직도 신이한 것을 추구하는 면이 강하다.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실제 삶을 다루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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