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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수행 정근영(70, 거바까)-하

기자명 법보

말보다 실천 중요한 종교 불교
위빠사나는 구체적·실천 용이
몸·느낌·마음·법 관찰하는 수행
일상서도 정진 이어가길 발원

70, 거바까

불교는 실천하는 종교다. 무엇보다 절은 수행을 실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싫어하는 것은 종교인들이 말만 거룩하게 하고 수행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는 불법을 믿음으로써 생활을 빛내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으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원불교 정전’엔 교리도 신앙의 길과 수행의 길을 나눠 놓고 이를 병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 ‘원불교 정전’에는 좌선법이란 장이 있다. 좌선의 요지와 좌선의 방법, 좌선의 공덕, 단전주의 필요를 개략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원불교 정전’의 이 좌선법은 통도사 조실이었던 경봉 스님이 지은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지거라’라는 책에 실린 글과 일치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나 혹은 좌선의 효과나 방법이 비슷했을 수 있다. 아니라면 표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의문을 원불교 측과 통도사 측에 다 물어 보았다. 원불교 측 대답은 성인의 가르침에 표절이 없다고 했다. 누구든지 성인의 말씀을 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통도사 측에서는 평생을 참선으로 일관한 스님이 원불교 책을 표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대답을 보내왔다. 여기서 이 글의 표절 여부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이 좌선법이 아주 잘 된 표준이 아닐까 싶어서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싶다.

경봉 스님의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지거라’에서는 좌선의 요지와 방법, 공덕 등이 개략적으로 설명돼 있다. 이 좌선법이 아주 잘 된 표준이 아닐까 싶다. 해서 좌선 실참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좌선법에 따라서 좌선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빠사나 수행이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이 용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에 대한 관심은 수십년이 되었건만 그때나 지금이나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같이 등산했던 한 친구의 고백도 그랬다. 등산을 자주 하면 등산이 쉬워진다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는 언제나 힘들다고 토로했다. 수행도 다르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들어서 위빠사나 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종래의 수행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내가 위빠사나 수행에 처음 접한 것은 김해 다보산 ‘사띠 아라마’에서다. 이곳 ‘사띠 아라마’에서는 선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념(念)’자를 쓴다. 앉아서 수행하는 것은 좌념, 걸으면서 하는 수행은 행념이라고 한다.

몸, 느낌, 마음, 법을 대상으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배와 발걸음을 관찰한다. 좌념은 앉아서 숨을 쉬면서 배가 부르고 꺼지는 현상을 관찰한다. 행념은 걸음을 걸으면서 발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한다.

수행의 도구는 없다. 내 몸과 마음을 통찰, 꿰뚫어 아는 것이다. 조작은 없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그 숨을 관찰한다. 발걸음을 관찰하는 것도 그렇다. 왼발, 오른 발이 나가는 것으로 2단계에서 3단계, 6단계로 나누어 자세히 관찰은 하지만 그것을 조작하지는 않는다.

어떤 단체처럼 숨을 어떻게 쉬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숨을 들이쉴 때, 내쉴 때의 느낌에 집중하고 그렇게 해서 알아차림한다. 걸음도 그렇다. 걸음을 어떻게 걸으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발이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섬을 집중해서 관찰할 따름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들고 앞으로 나가고 발을 내려놓는 단계는 물론 그때 일어나는 마음이나 의도를 총 6단계로 나눠서 세밀하게 관찰한다.

사람의 삶은 숨 쉬고 걷는 것의 연속이다. 불교의 수행은 이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삶을 떠나서 수행은 없다. 삼매는 집중하는 것이고 위빠사나는 통찰하는 것이다. 삼매와 통찰은 하나의 길이다. 따로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간화선 다르고 위빠사나 다른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종래 불교에서 지관을 말하지 않았나. 지관이 바로 삼매와 위빠사나 수행이다.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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