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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김대승의 ‘번지 점프를 하다’

환생으로 완성한 사랑…윤회적 사유 담은 영화

17년전 사랑했던 태희의 환생
남제자 현빈 다시 사랑하게 돼
환생의 시각에선 모두가 인연
모든 대상 향한 자비심 알려줘

‘번지점프를 하다’는 환생과 윤회, 그리고 인연을 불교적 사유로 풀어낸 영화다. 사진은 ‘번지점프를 하다’ 스틸컷.

윤회와 환생은 불교적 개념이지만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외국영화는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리틀 부다’,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보살피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한국영화는 환생하여 연인을 찾는 ‘은행나무침대’가 대표적이다. 환생은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반복한다는 불교적 사유다. 김대승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멜로영화의 장르를 채택했지만 환생이라는 주제로 사랑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 작품은 선생님 인우(이병헌 분)가 17년 전에 사랑했던 태희(이은주 분)가 환생한 남학생 현빈(여현수 분)을 사랑하는 이야기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산과 산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항공 촬영하였다. 부감으로 펼쳐진 풍경은 흐르는 물과 푸르른 숲과 보이지 않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강물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강이 흘러가고 생명은 환생으로 영속되어 무한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환생과 인연의 지속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인우는 우산을 쓰고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린다. 그의 우산 속으로 태희가 들어왔다가 버스를 타고 떠난다. 인우는 첫눈에 태희에게 반하고 태희가 떠난 곳을 바라본다. 인우는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 시간의 흐름은 디졸브와 저속촬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류장의 인우는 태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내비친다. 인우는 기다림의 주어이고 태희는 다시 돌아온다의 주인공이다.

인우는 처음에는 정류장에서 태희를 기다리지만 나중에는 군 입대를 앞두고 용산역에서 기다리고 결국 이승에서 환생하여 돌아올 태희를 기다린다. 용산역 앞의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한 태희는 결국 17년이 지나서 남학생 제자인 현빈으로 환생하여 도착한다. 기다린 인우와 도착한 태희의 만남은 인연과 윤회로 이 영화는 답한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된 인우는 칠판에 분필로 가로로 길게 줄을 긋고 나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선생과 학생이 만나는 것은 인연이다. 그 의미는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되는 기가 막힌 확률 그게 바로 인연”인 것이다. 선생과 학생은 엄청난 확률로 만난 인연이기에 귀한 관계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환생한 태희와 기다린 인우가 밀씨와 바늘로 만날 것이라는 복선을 암시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러 장면으로 묶어준다. 인우는 태희를 보고 싶어서 미술학과 수업을 도강하고 조각 실습을 도와준다. 어느 날 인우는 태희의 풀린 운동화끈을 묶어준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펴라는 마법을 걸었다고 전한다. 운동화끈을 묶는 것은 인연의 맺음이며 17년 후에 일인 삼각 경기를 하는 인우와 현빈의 다리를 묶는 것으로 반복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번지점프 직전에 손과 손을 잡는 것으로 완결된다. 묶는 것은 인연으로 묶인다는 의미의 시각적 표현이다. 태희의 새끼손가락을 펴는 것은 인우와 태희가 해변에서 만났을 때 인우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등장하고 17년 후에 현빈이 음료수 캔을 든 장면에서 태희의 환생을 확증하는 장면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환생과 윤회, 그리고 인연을 불교적 사유로 풀어낸 영화다. 사진은 ‘번지점프를 하다’ 스틸컷.

두 사람은 환생을 통해 밀씨와 바늘로 만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맞춰준다. 인우와 태희는 산의 정상에서 대화를 한다. 태희는 뉴질랜드에 가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은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우와 현빈은 그 자리에 다시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고 다음 장면에 뉴질랜드로 가서 번지점프를 한다. 태희의 소망을 17년이 지나 이루어지게 한 셈이다. 태희는 인우에게 여자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선물한다. 인우는 멋있게 담배를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라이터에 불을 붙여 담배 피기를 시도한다. 현빈과 혜주는 길거리 노상에서 라이터를 구입하고 현빈은 라이터에 끌린다. 수업 시간에 인우는 그 라이터에 새겨진 태희를 닮은 여성을 그린 현빈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라이터와 새끼 손가락 펴는 것은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을 반복한다.

결국 그들은 17년 전에 만나기로 했던 용산역에서 기다린 인우와 환생한 태희가 만난다. 만남은 열차의 프레임의 거울을 통해 인우와 태희로 돌아와 재회한다. 기다림과 만남이 결국 한 프레임에 모여 소원을 이룬 것이다. 인우의 태희에 대한 사랑은 “늦더라도 기다려야 돼”라는 태희의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표면에 보이는 남자선생님과 남학생의 사랑이라는 동성애는 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와 환생을 해서 도착하는 여자의 사랑으로 설득된다. 월호 스님은 애착과 진정한 사랑을 구분하셨다. 애착은 ’윤회의 굴레에서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것’,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상대방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영화는 윤리와 불화하고 틈을 만든다. 대중 영화는 법의 준수와 마음의 평정보다 질서의 위반과 사랑의 지고함에 더 눈길을 준다. 영화는 관습적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위반과 환상의 작업에 가깝다. 멜로영화의 지고한 가치는 결국 사랑이므로 제자로 환생한 여인까지 사랑하는 남자는 사랑 우선주의의 시각에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관객은 누구나 인우가 될 수 없으며 세상의 저자거리에 인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영화는 인우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인연과 환생의 눈으로 바라볼 때 만나는 모든 대상을 수평적으로 바라보고 애정과 자비심을 베푸는 것이 도리임을 이 영화는 설득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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