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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설일체유부와 세친의 언어관 ③

소리와 이름 관계 어떻게 보느냐에 관점 달라져

세친은 언어를 성처에 포함
우리 주관성이 개입된 상태 
유부는 이름을 유위로 판단
업의 작용과도 긴밀한 관계

설일체유부는 세친이 주장하듯이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는 그 본질적 측면을 간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유부는 인식의 구조상 언어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를 이름으로 보는 듯하다. 사실 언어관의 차이는 언어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이름 등에 의한 것인가? 혹은 언어자체가 사회적 약속에 의해서 이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라는 문제와 결부된다. 예컨대 유부는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말은 사라지지만 이름 등은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면에 세친은 언어는 이미 사회적 약속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것으로, 별도로 이름 등의 실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이러한 유부와 세친의 언어관은 인식의 구조상 12처나 18계의 구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사실 세친은 언어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음성 이외에 별법으로서 ‘명·구·문’이라는 요소를 내세우는 유부의 입장을 비판한다. 즉 “단순한 소리가 말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소리에 의해서 의미가 이해될 때 그런 소리가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말은 화자들에 의해 의미의 한계가 규정된(kṛtāvadhi) 것이다. 예컨대 ‘고(go)’라는 음성은 9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의미의 한계가 규정되어 있다. 즉 ‘고(go)’라는 음성은 말·방위·땅·햇빛·금강석·짐승·눈·천국·물 등 9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현자들은 이해한다. 이름이 대상을 밝혀준다고 생각하는 자도 ‘고(go)’라는 등 그 단어의 의미가 화자들의 약속(saṅketa)에 의해서 잘 알려져 있는(pratītapadārtha) 것이라는 전제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 이름은 단어의 의미(padārtha)가 화자들의 약속에 의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의 그러한 음성에서만 성립한다. 따라서 ‘이름’이라는 음성 이외의 다른 존재(arthāntara), 즉 심불상응행법으로서 실체를 주장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와 같이 세친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화자들 간에 이미 약속된 것으로서 의미 없는 단순한 소리와는 구별된다고 본다. 예컨대 ‘고(go)’라는 음성도 이미 9가지 의미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고(go)’라는 이름이 부여될 수 있고, 또한 이것을 통해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친은 이미 약속된 의미를 가지는 음성 이외에 ‘명·구·문’ 등의 다른 실체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유부는 이름 등의 별개의 실체를 인정하고, 특히 명·구·문 가운데 이름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서 언어가 의미를 가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요컨대 세친은 붓다의 교법을 12처 가운데 성처(聲處)에 포함시킨다. 이것을 세친이 말하는 의미 있는 소리 즉 음성과 관련시켜서 보면, 성처에 해당하는 소리는 이미 우리의 주관성이 개입된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예컨대 세친의 관점에서 말은 12처나 18계의 구조로 볼 때, 즉 청자의 귀(耳根)에 포착된 소리(聲)는 이미 우리의 인식주관에 의해서 알려진 대상을 의미하게 된다. 반면에 유부는 귀(耳根)와 소리(聲)를 연하여 청각(耳識)이 발생할 때, 즉 인식의 구조상 3사의 만남(촉) 이후의 제2차적 인식에서 이름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유부는 소리와 이름을 구분한다.

결국 유부의 관점에서 음성은 무상한 것으로 한 번 말한 뒤에는 사라지지만, 말과 결합하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언어인식에는 이름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는 생주이멸의 4상과 결합할 때는 유위의 현상에 포함되고, 반면에 이름이 개입되지 않는 인식 즉 무루지는 무위의 현상에 포함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유부에 따르면 이름은 심상을 만드는 수단인데, 이는 이름이 업의 작용이나 용수가 강조하는 희론분별 등과도 매우 긴밀한 것으로 보인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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