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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원정사의 건립과 슈베르트의 예술가곡 

기자명 김준희

붓다의 가르침·거장의 예술 지지한 굳건한 토대

19세기 예술가곡 이끈 슈베르트
‘슈베르티아데’ 전폭적 지지 받아
수닷타 장자가 건립한 기원정사
부처님 가르침 확산 기반되기도 

슈베르트 예술가곡 ‘바위 위의 목동’ 자필악보.

‘바위 위에서 저 아래 골짜기를 향해 노래하네/골짜기의 메아리는 아득하게/멀리 멀리 계곡에 울려 퍼지네/내 목소리 더 멀리 울려 퍼질수록/저 아래로부터 또렷이 되돌아오네./내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그 곳의 그녀가 더욱 그립구나./깊은 번민 속에 기쁨은 사라지고,/희망을 잃고, 외로움에 빠져든다./노래는 숲을 울리며,/밤새 간절한 그리움으로 들려온다./어느새 노래는 알 수 없는 황홀함으로/내 마음을 하늘로 이끌어 날갯짓 하게 하네./봄이 왔다./나의 기쁨인 봄./이제, 여행을 가야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의 가곡 ‘바위 위의 목동(Der Hirt Auf Dem Felsen)’은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 뮐러의 시에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반주를 붙인 상당히 특이한 작품이다. 목가적 풍경과 어린 목동의 정취가 잔잔하게 흐르는 이 예술가곡(Lied)은 슈베르트의 섬세함과 낭만성, 그리고 시와 문학에 대한 이해가 빚어낸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슈베르트는 담담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아름다운 클라리넷 선율 위에 외롭고 고독하지만 의연한 목동의 고백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가곡 ‘거처(Aufenthalt)’는 슈베르트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의 다섯 번째 곡으로 렐슈타프의 시에 곡을 붙힌 노래이다. 방랑하는 고통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결국 내가 머무를 곳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곡은 외로움과 고독의 또 다른 얼굴인 비장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결 굽이치고 수풀 우거지고 우뚝 솟은 바위는 나의 처소/겹겹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내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네/저 먹구름이 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의 가슴은 무너진다/저 아주 오래된 바위처럼 내 고통도 영원하리.’

쉬라바스티 기원정사.

19세기에는 예술가곡의 발달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문학과 음악의 결합으로 대표되는 예술가곡은 시와 음악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또한 이전시대의 반주는 화성이나 리듬으로 독창을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예술가곡의 피아노 부분은 가사의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하고 회화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능동적인 역할을 맡았다. 성악과 피아노가 아름답게 조화되는 예술가곡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하게 되었다. 

코살라국의 신심있는 부유한 상인 수닷타는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나타삔다까’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급고독(給孤獨, 고독한 자에게 지급한다)’이라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마가다국의 처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무엇인가 들뜬 기분으로 집안을 분주하게 오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형님, 내일은 부처님께서 저희 집으로 오셔서 공양을 하십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붓다의 이름을 들은 수닷타 장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닷타는 새벽녘까지 깊이 잠들지 못한 채 깨어 있다가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붓다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서두른 덕분일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묘지 근처를 산책하던 붓다는 수닷타를 알아보고 그를 불렀다. 수닷타는 붓다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에 감격하고 붓다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붓다는 수닷타에게 보시의 공덕과 청정한 생활규범의 공덕, 그리고 괴로움의 원인과 그 소멸을 위한 길에 대해 설법했다. 붓다를 친견한 뒤 ‘생사를 초월한 진리’를 깨닫게 된 수닷타는 환희심에 가득 차 붓다를 위해 거처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대 축복 받은 예술, 그 얼마나 자주 어두운 시간에/인생의 잔인한 현실이 나를 조여 올 때/그대는 나의 마음에 온화한 사랑의 불을 붙였고,/나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였던가!/한숨이 종종 너의 하프에서 흘러나왔고,/달콤하고 신성한 너의 화음은/보다 나은 시절의 천국을 나에게 열어주었지/그대 축복받은 예술, 이에 나는 그대에게 감사한다.’

‘음악에(An Die Musik)’는 깔끔하고 간단한 멜로디와 피아노 반주를 지닌 슈베르트의 가장 훌륭한 예술가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친구 프란츠 폰 쇼버의 시에 곡을 붙힌 이 곡은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뜻이 가득 담겨 있으며, 간결한 음악 속에 청년 슈베르트의 순박한 감정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노래가 끝나고 난 뒤의 피아노 후주는 노래의 여운을 남기며, 단순하지만 내면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슈베르트는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평생을 교류해왔고, 겸손하고 성실한 그의 성품을 사랑한 당대 최고의 재사(才士)들은 슈베르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예술에 대한 사랑, 음악에 대한 감사, 친구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 등의 순수한 감정들은 그의 예술가곡을 통하여 표출될 수 있었다. 

슈베르트의 지인들이 그를 위해 만든 모임 ‘슈베르티아데’(Moritz von Schwind 그림,1868년).

붓다의 재가 제자가 된 수닷타는 코살라국으로 돌아와 사왓티성 가까운 곳에 붓다가 머물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수닷타는 당시 파사익왕의 아들 제타태자가 소유한 동산이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제타태자에게 그 땅을 팔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제타태자는 “이 동산을 황금으로 덮을 수 있다면, 그만큼의 땅을 드리겠다”고 했고 수닷타는 망설임 없이 황금을 실어 날랐다. 수닷타의 신심에 감동한 제타태자는 수닷타에게 받은 황금으로 입구를 장식하는 문을 지었다. 기원정사는 이렇게 건립되었다. 

기원정사는 사왓티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붓다는 사찰이 “사람들이 많은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붓다와 그의 제자들은 매일 아침 마을을 돌 수 있었고, 신도들 역시 사찰을 방문하고 설법을 듣기가 편리했다. 한 장소에서 붓다와 출가자가 대중과 함께 오랜 시간 머물 수 있었고, 수행생활의 관리를 통해 승가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으며, 교육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슈베르트는 평생 동안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하며 낭만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고, 예술가곡은 슈만 브람스를 거쳐 볼프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잇게 된다. 슈베르트는 그의 재능을 사랑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모임 속에서 순수한 그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다. 붓다의 가르침의 위대함을 칭송한 급고독장자 수닷타의 기원정사 건립으로 붓다는 그곳에 가장 오래 머무르며 그 뜻을 펼칠 수 있었고, 기원정사는 사왓티를 중심으로 불교가 오늘날까지 긴 세월을 이어질 수 있도록 그 밑바탕이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초석이 된 슈베르트의 예술가곡이 주는 정갈함과 가사의 깊은 뜻은 기원정사 건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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