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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달마도

기자명 손태호

호쾌한 선들로 고매한 기상 표현한 조선 최고 선화

장승업 더불어 신필로 불린 김명국
일본통신사 시절에 그린 대표 작품
일필휘지로 그려낸 달마대사 얼굴
왜인들 향한 측은함과 고뇌 느껴져
교만한 일본에 보여주고픈 그림

김명국 作 ‘달마도’, 83.0×57.0cm,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일본과의 외교갈등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난관을 타개해보겠다고 국회의원들이 방일단을 만들어 일본의 집권당 제2인자를 만나러 갔는데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선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결국 만남을 거절당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대표단과 약속을 해놓고선 현해탄을 건너온 우리 대표단에게 바람을 맞힌 것입니다. 이런 모욕은 개인 간의 약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데 나라간의 공식방문단, 그것도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들과의 약속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거부한 것은 우리나라 전 국민에 대한 모욕이며 현재 일본 집권 우익세력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런 무례는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전쟁 후에도 없었던 행동이며 이들의 인식이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발 아래로 보는 일제강점기 일본 우익들의 인식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한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예술전시를 ‘안전’이란 핑계로 가로막는 반예술적 폭거도 자행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무기와 권력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임을 일본 우익들은 전혀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일본은 선진 문화에 대한 갈증을 조선통신사를 통해 해소하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 자신들의 생활에 적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통신사 파견은 중단되었고 그 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였지만 조선은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끝난지 40여년이 지난 1609년 지속적인 일본의 요청에 조선통신사의 파견이 재개되었는데, 이는 조선의 문화를 과시하는 한편 일본과의 외교복원을 통해 다시 전쟁을 만들지 않으려는 외교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조정에서는 통신사 일행을 선발하는 데 있어 문화적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매우 기량이 뛰어난 인물로 선발했고 특히 그림을 과시하기 위한 화원, 글씨와 문장을 과시하는 사자관, 마상무예를 선보여야 하는 군관은 그 기량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선발하곤 했습니다. 그중 글씨와 문장은 한문을 아는 일본인들에게만 인기가 있었으나 그림과 마상무예는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었기에 화원의 비중은 통신사에서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통신사로 파견했을 때 그림이 제법 남아 있는데 그중 오늘 함께 감상하고자 하는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 1600~1662)의 ‘달마도(達磨圖)’도 통신사 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그림은 ‘달마도’의 원조격이자 조선시대 최고 ‘달마도’인 김명국이 그린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부분이 붓의 속도감입니다. 옷주름선에 꼬리를 만들만큼 붓을 빠르게 휘돌렸습니다. 몇 번 안 되는 굵은 선으로 옷주름을 표현했는 데도 선을 굵기를 달리하여 투박해 보이지 않습니다. 꾹 눌러 내려가다 꺾어지고 그러다 다시 삐쳐냈습니다. 옷 선만 그렸는데 손과 자세가 다 살아났습니다. 반면에 얼굴은 상대적으로 꼼꼼하게 그렸는데 눈은 왕방울만 하게 부리부리하게 그렸고, 눈썹은 팔 자형으로 마치 눈을 찌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는 매부리코, 수염은 콧수염과 턱수염 둘 다 짧은 붓으로 여러 번 반복하여 거침없이 빠르게 그렸습니다. 입은 “진리는 말과 글로 전할 수 없다”고 한 달마대사답게 한 일(一)자로 꽉 다물고 있습니다. 아마 얼굴을 가장 먼저 그렸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형식적인 부분을 최대한 생략해서 그리는 감필법이 돋보이고 선의 굵기를 달리하여 단순함을 극복하고 생동감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렇게 빠른 붓질로 그리면서도 선이 번지거나 겹치지도 않았으며 붓질을 추가한 곳도 없습니다. 빠른 붓놀림으로 이정도 높은 수준으로 그렸다는 것은 아마도 화가가 ‘달마도’를 여러 번 그려보았다고 추측됩니다. 그냥 한번 그려서 될 경지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달마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그린 그림입니다. 턱수염 아래로 보이는 세 선은 삼도(三道)의 표현으로 불보살상에 꼭 나타나는 상징으로 화가는 불교 존상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김명국은 어느 스님의 요청으로 ‘지옥도’를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김명국은 불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좌측 하단에는 연담(蓮潭)이라 적고 인장을 찍었습니다. 연담이라 쓴 글씨체는 마치 그림의 용법과 동일하여 그림과 화가가 하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감상자 중에는 ‘달마도’를 김명국의 자화상이라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연담의 본관은 안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국담(菊潭), 취옹(醉翁)을 사용했으며 도화서 화원을 거쳐 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1636년(인조14)과 1643년 두 차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화원으로 두 번이나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김명국이 유일한데 이는 일본에서 김명국을 파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신선이나 달마를 그리는 선화(仙畵)가 유행했는데, 섬세하지만 얌전한 필치로 그려진 일본식 선화에 비해 감필법을 바탕으로 선의 비수(肥瘦)가 다양하고 일필휘지한 그의 선화들은 일본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때 그린 선화도가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일본 시모노세키박물관 소장 ‘습득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마절로도강도’ 등이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입니다. ‘달마도’ 또한 통신사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 일본에 남아 있다가 나중에 되돌아 온 그림입니다. 

‘달마도’는 호쾌한 선들이 어우러진 고매한 기상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호방한 기상 그 저변에 번뇌로 고통 받는 중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김명국은 본래 참된 성품이지만 껍데기에 억매여 고통에 허덕이는 일본인들이 안쓰러웠을까요? 아니면 엄청난 전쟁으로 여전히 전쟁의 상혼으로 괴로워하는 일본인들이 불상했을까요? 팔(八)자로 찌푸려진 눈썹과 날카롭지만 측은함이 묻어나오는 눈빛에서 달마의 고뇌가 전해집니다. 

달마는 ‘벽관(壁觀)’으로 사람들에게 안심(安心)을 가르쳤습니다, 밖으로 온갖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임이 없는 장벽 같은 마음. 그 마음을 찾기 위해 9년 동안 벽을 마주하는 수행을 통해 믿음과 닦음을 하나로 통합시켜 분별을 없애고 무위(無爲)의 경지를 이룬 보리달마. 오늘날 보리달마조사가 중생을 바라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여전히 온갖 인연에 휩쓸려 살아가고 욕심으로 스스로 마음의 지옥을 만들어가는 중생들이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을까요? 

김명국의 평가는 후대에 많은 평론가들에게 새롭게 조명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5)는 “인물이 생동하고 필묵이 혼용하여 백년 이내에는 겨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으며, 조선후기 미술평론가 남태응(南泰膺, 1687~1740)은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는, 오직 김명국 한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고 평했습니다. 조선시대 화가 중 장승업과 더불어 ‘신필’이라 불린 김명국의 ‘달마도’. 오늘날 여전히 번뇌와 욕심, 남을 힘으로 누르려는 교만을 떨치지 못하는 일본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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