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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스님 “시주 은혜 마음속 깊이 새기라”

  • 교계
  • 입력 2019.08.13 17:12
  • 호수 1501
  • 댓글 0

8월13일 하안거 해제 앞두고 법어로 정진 당부

진제 스님.
진제 스님.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8월15일 기해년 하안거 해제를 앞두고 법어로써 대중들의 부단한 정진을 독려했다.

진제 스님은 8월13일 발표한 해제법어에서 “세월은 낮과 밤이 따로 없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관계없이 쉼 없이 흐르고 있다”며 “생사가 이와 같이 신속하니 안거가 끝났다고 화두없이 행각에 나서거나 각 수행처에서 나태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계했다. 특히 “부처님 진리를 배우는 제자들은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부처님 은혜와 시주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한다”며 “늘 아침저녁으로 부처님 전에 발원하면서 공부상태를 돌이켜보고 점검해야 물러나지 않는 용맹심을 갖게 되니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해년 하안거에는 총 1991명의 대중이 용맹정진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정진 대중 현황을 정리한 ‘기해년 하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전국 98개 선원(총림 8곳, 비구선원 54곳, 비구니선원 36곳)에서 총림 270명, 비구스님 1058명, 비구니스님 663명이 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안거란 동절기와 하절기 각각 3개월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선불장이다.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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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해제법어 전문.

宗正猊下 己亥年 夏安居 解制 法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佛祖場中不展戈<불조장중부전과>어늘
後人剛地起詨訛<후인강지기효와>라.
道泰不傳天子令<도태부전천자령>이요
時淸休唱太平歌<시청휴창태평가>로다.

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
뒷 사람들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영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
세상이 맑은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금일은 어느 듯 석 달의 안거(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이라. 세월의 흐름이란 주야(晝夜)가 따로 없고 춘하추동의 계절(季節)에 관계없이 쉼 없이 흐르고 있음이라. 생사(生死)도 이와 같이 신속(迅速)하니 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화두(話頭)없이 행각(行脚)에 나서거나, 각 수행처소에서 나태(懶怠)하거나 방일(放逸)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부처님의 진리(眞理)를 배우는 제자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 더운 것과 추운 것 등 주변 환경에 구애(拘礙)받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은혜(恩惠)와 시주(施主)의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 이로부터 신심(信心)과 발심(發心)이 생겨나고 여일(如一)한 정진을 할 수 있음이라.

이 공부는 요행(僥倖)으로 우연히 의심이 돈발(頓發)하고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신심과 발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조석(朝夕)으로 부처님 전에 발원(發願)하면서 자신의 공부상태를 돌이켜보고 점검하여야 퇴굴(退屈)하지 않는 용맹심을 갖게 될 것이니 명심(銘心)하고 명심하여야 할 것이라.

수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기만 할 뿐이지, 알려주면 따르지 않는 이가 대다수(大多數)이다. 편하고 쉽게 정진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높은 산을 오르고자 하면서 몸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과 같음이라.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정진하고도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고 득력(得力)을 하지 못하는지 각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여 시냇물이 흐르듯이 끊어짐이 없도록 애를 쓰고 애를 써야 할 것이라.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 계셨다. 조주선사께서는 10세미만의 나이로 출가하여 남전 선사께 인사를 올리니, 남전선사께서는 누워 계시던 채로 인사를 받으며 물으셨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남전 선사께서 누워 계시니 하는 말이다. 남전 선사께서 이 말에 놀라, 그제서야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 대단히 추우니 스님께서는 귀하신 법체(法體) 유의하시옵소서."
그대로 아이 도인이 한 분 오신 것이다. 남전 선사께서 기특하게 여겨, 원주를 불러 이르셨다.
"이 아이를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부처님의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확철히 깨달을 것 같으면, 몸을 바꾸어 와도 결코 매(昧)하지 않고, 항상 밝아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이다. 이 사미승이 바로 조주(趙州) 스님인데, 이렇듯 도(道)를 깨달은 바 없이 10세 미만인데도 다 알았던 것이다. 조주 스님은 여기에서 남전(南泉) 선사의 제자가 되어 다년간 모시면서 부처님의 진안목(眞眼目)을 갖추어 남전 선사의 법(法)을 이었다.

조주 선사 회상(會上)에서, 한 수좌(首座)가 석 달 동안 공부를 잘 해오다가 해제일(解制日)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이르셨다. "부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아나라. 만약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 들어 말하지 말라." 이에 그 수좌가, "스님,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摘楊花摘楊花]"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하는데 어째서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고 하는가? 이러한 법문은 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만일 누구라도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이 법문의 뜻을 알아낸다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意)를 한꺼번에 다 알아서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음하리라.

조주 선사의 "摘楊花摘楊花(적양화적양화)"를 알겠는가? 千里烏騅追不得(천리오추추부득)이라. 천 리를 달리는 오추마라도 따라잡기 어렵느니라. 약 100여년 전 우리나라에 만공(滿空)선사라는 도인스님이 계셨는데, 수십 명 대중에게 항시 바른 수행을 지도하고 계셨음이라. 하루는 몇몇 수좌들과 마루에 앉아 한담(閑談)을 하고 있는 차제(此際)에 처마 끝에 새가 푸우울 날아가니 만공선사께서 물으셨다.

“저 새가 하루에 몇 리나 날아가는고?”
이 물음에 다른 수좌들은 답이 없었는데 보월(寶月)선사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명답을 했다.
“촌보(寸步)도 처마를 여의지 아니했습니다.”

훗날 만공선사께서 열반에 드시니 산중회의에서 고봉(高峯)선사를 진리의 지도자인 조실(祖室)로 모시기로 하였다. 어느 결제일이 도래하여 대중이 고봉선사께 법문을 청하니, 고봉선사가 법문을 위해 일어나서 법상에 오르려 하였다. 바로 그때 금오(金烏)선사가 뒤를 따라가서 고봉선사의 장삼자락을 잡으면서 말했다.
“선사님,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고봉선사가 이렇게 말하니, 금오선사가 재차 물었다.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그 후로 40년 세월이 흘러 하루는 산승의 스승이신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이 대문을 들어서 물으셨다.
“네가 만약 당시에 고봉선사였다면 금오선사가 장삼자락을 붙잡고 한 마디 이르고 오르라 할 때에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향곡선사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산승은 벽력같이 ‘할(喝)’을 했다. “억!” 하고 할을 하니, 향곡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그렇게 할을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을 다 멀게 하여가리라.” 할이 틀렸다는 말이다. 향곡선사의 이 같은 말씀에 산승이 바로 말씀 드렸다.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 멋지게 회향하셨다.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자고(自古)로 법담(法談)은 이렇게 나가야 된다. 장삼자락을 붙잡고 ‘이르라’ 할 때에는 한 마디 척 해야 되는데, 산승이 즉시 ‘할’을 한 것은 묻는 상대의 안목(眼目)을 한 번 흔들어 놓는 것이다. 즉 묻는 사람이 알고 묻느냐 알지 못하고 묻느냐, 상대의 안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는 바로 낙처(落處)를 아시고는 ‘네가 만약 그렇게 후학을 지도한다면 앞으로 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간다’고 바르게 점검하신 것이다. 이렇게 흑백을 척척 가릴 수 있어야 선지식이 되고 만 사람의 바른 지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눈이 없다면 태산(太山)이 가리고 있어서 선지식 노릇을 할 수 없는 법이다.

향곡선사의 말씀에 산승이 ‘소승의 허물입니다.’ 하고 바로 잘못을 거두니, 향곡선사께서도 ‘노승의 허물이니라.’ 하고 바로 거두셨으니, 이 얼마나 멋지게 주고받은 진리의 문답인가! 이처럼 남방의 불법과 북방의 불법의 심천(深淺)이 크게 있는 것이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대문(大文)을 바로 보시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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