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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선원 주지 자광 스님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 속에 불교 진리 있습니다”

과거의 생은 현실에 나타나고
내생은 현재의 모습에서 결정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업창고에 기록돼 결과 나타나

업의 결과는 누구도 거부 못해 
신이 구원한다는 건 미신 불과
업의 결과를 믿고 선업 쌓으려
노력하는 게 불교의 참 가르침

​​​​​​​사회 혼란으로 현대인들 고통
도덕규범 흔들리며 혼돈 가중
이럴 때일수록 오계 근본돼야

자광 스님은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부처님 계율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면서  “불자들은 오계를 꼭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광 스님은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부처님 계율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면서  “불자들은 오계를 꼭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은 우리 절에 귀한 손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조계종립 서울 은석초등학교 학생들이 왔습니다.  합창부와 관현악단 학생들이 반야선원 불자들에게 음성공양을 하겠다고 합니다. 훌륭한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고 학부모님들도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인연을 맺게 돼 기쁩니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욕지래생사 금생작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라는 말이 있습니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내가 전생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여기에 왔는가를 알고자 하면 현재 본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안다는 의미입니다. 욕지래생사 금생작자시는 반대로 내가 죽어서 내생에 어디에 태어나느냐에 대한 것인데 이것을 알고 싶으면 지금 내가 인간의 몸을 받아 살면서 한 행동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는 카르마라고 하는 업창고가 있습니다. 그 큰 창고가 무슨 창고냐면,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 일거수일투족이 그 속에 모두 저장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했으면 착한 일을 한 그대로 나쁜일 했으면 나쁜 일 한대로 모두 쌓이는 겁니다. 하나도 넘기는 것 없이 100% 다 쌓입니다. 행동을 조심해야겠죠. 

스마트폰으로 또 방법용 CCTV로 걸어가는 것,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찍히고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는 녹음기를 틀고 저장하고 있겠지요. 모든 것이 저장되는 만큼 세상은 무서워졌습니다. 두렵지 않으려면 내가 실수하지 않고 잘하면 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업창고에 쌓여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계기를 만나 인연이 되면 튀어 나옵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몸뚱이 행동으로 옮겨진다 이 말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좋은 업을 쌓았으면 좋은 결과가 튀어나오고 나쁜 업을 쌓으면 나쁜 결과가 튀어나와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업창고에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질러서 나쁜 업보가 많이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때리고 싶다 하지도 않았는데 폭력적인 행동들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쌓아 놓은 악한 과보가 풀려나온 겁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착한 행적이 업창고에 쌓여있으면 내 인생이 순탄하고 더 많이 쌓여있으면 행복한 일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하면 그것이 풀려나와 나의 생활에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CCTV를 무서워할 것이 아니고 업창고를 무서워해야합니다. 여기에 쌓여있던 업보따리가 풀려나오면 이게 무서운 에너지로 확장돼 내가 엄청나게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실수를 하게 되고 남과 다투게도 되는 것입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자기가 지어놓은 업보는 어느 누구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회피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지어놓은 업보는 내가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지은 업은 내일 받을 수도 있고 내생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자식이 받을 수도 있고 이웃이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착한 업보따리가 쌓이면 내 생활도 무탈하고 행복해집니다. 악행을 많이 했으면 악한 보따리가 풀려나와서 내 인간생활에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꼭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과학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로 생각해보세요. 신이라는 절대자가 어느 날 잘살게 해 주고 못살게 해주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이 어느 날 복을 줬다가 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가 모두가 관계 속에서 태어난 것이고 관계 속에서 생성하는 것이기에 죄도 행복도 오로지 내가 한 행동이 업창고에 쌓여서 그대로 풀려나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 다른 것은 자기가 지은 업보가 그렇게 풀려났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원망하지 맙시다. 이걸 가르치는 게 불교입니다.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것, 신이 알아서 해주고 지옥에서 건져준다는 건 미신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불교가 무엇입니까?

당나라 승려인 조과선사(鳥窠禪師)가 불법을 묻는 백거이(白居易)에게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악을 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죠. 이는 지고한 가르침입니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지요. 이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누군가 저에게 “스님 종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시면 난 불교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비행하는 하는 사람이오”라고 말합니다. 자비행이 바로 불교입니다. 자비행은 선행을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자는 선행하는 사람입니다. 악행은 다하면서 돌아다니면서 불자라고 입으로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불교에는 오계라는 것이 있지요. 불자라면 꼭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입니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 음행 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다섯 가지 규범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어기면서 무슨 선행을 하겠습니까. 성질서가 문란해지면서 사회가 혼란해지고 무고한 생명을 뺏으려는 일이 난무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선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짧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부처님 가르침만을 따르며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너무도 고통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정치도 혼란스럽고 사회 전반이 기준을 잃고 혼돈상태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덕도 흔들리고 진리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니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행동해버리고 주장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 구분을 못하고 살고 있어요. 여러분들 이 노래 알지요? 

“어둠은 한순간 그대로가 빛이라네.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이 무명을 거두고 우주를 밝히는 이제는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다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우리도 부처님같이 우리도 부처님같이”

노래 ‘우리도 부처님같이’처럼 부처님만 생각하며 한번 생활을 해보세요.

쾌락은 잠시입니다. 말초신경의 상큼한 쾌락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오는 고통은 엄청나게 심합니다. 향락은 정말로 허무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과 인연 맺고 사는 만큼 잘 살아야 합니다. 예의범절을 지켜가며 지킬 건 지키며 살아야겠지요.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분간도 못하고 혼란스럽게 사는 건 지옥 가는 길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 윤리도덕 교과서도 없어지고 있는 판에 무엇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겠습니까. 부처님 계율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자비광명을 계속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중생들을 위해서 자비광명을 빛나게 밝게 비치고 있는데 여러분들의 탐진치 삼독과 모든 번뇌망상이 먹구름으로 변해 부처님이 쏟아주는 광명의 빛을 막아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무리 비추고 비추면 뭐합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어두운 구름이 가득하다면 그 밝은 빛을 받을 수가 없어요. 이제 우리 어두운 먹구름을 걷어냅시다. 부처님이 시시각각으로 쏟아붓는 밝은 빛을 받아서 밝게 살고 지혜롭게 살고 행복하게 삽시다.

정리=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이 법문은 용인 반야선원 주지 자광 스님이 7월7일 ‘은석초 초청 특별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501호 / 2019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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