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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

여백 가득한 ‘꽃 절’에서 ‘고아한 평온’을 전하다

이두 스님 시 한 편에
내심 출가은사로 결정

10대 후반에 출가단행
해인사 강원서 ‘첫 글’

소소한 일상의 행복가치
진솔·담백하게 전해 공감

꽃·정원석·나무 한 그루
정갈하게 심고 가꿔 가

“주지 없는 산사에서도   
차·산책 즐기며 쉬시길!”

법석 살아야 불교 펄펄
대중 눈높이 법문 절실

더 깊은 침묵 원할 때
마야사도 놓고 떠날 것

현진 스님은 “성을 쌓다 남은 돌처럼 살고 싶었다”며 “번거로운 일 멀리하고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둥그런 디딤돌 하나하나 밟아가며 도량에 들어섰다. 서울 도심의 작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2층 카페. 이색적이다. 찻집 창문에 새겨진 ‘테이크 아웃’. “자유롭게 거닐어 보시라!”는 주지 스님의 바람을 새긴듯하다.

찻집 마당 곳곳에 작은 부처님 앉아 계신다. 언제 저리 고운 부처님들을 품에 다 안았을까. 고찰(古刹) 숨결 배인 낡은 기와로 쳐놓은 담장. 고아해 정감 있다. 그 옆 나무 아래에 키 낮은 벤치 놓여 있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나뭇잎 사이로 들어차는 눈부신 햇살을 담아가라는 뜻일 터다. 두 팔 활짝 벌린 듯, 양 옆으로 쭉 뻗은 감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 ‘대웅전(大雄殿)’ 현판이 보인다. 굳이 길을 찾지 않아도, 발길은 그 감나무 옆으로 난 나무계단에 닿는다. 원추형 돌탑 안에 작은 부처님 또 앉아계신다. 화살표 모양의 판자에 툭 적어 놓은 ‘법당가는길’ 팻말. 소박하다. 아, 글귀 하나 땅에 박혀 있다. 

回頭是岸
회두시안
머리를 발 아래로 돌려보니까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극락이더라.
행복은 멀리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뜻.

가슴이 탁, 트인다! 불과 스무 개의 계단 올라섰을 뿐인데. 대웅전, 탑 하나, 석등 둘. 그리고 한 움큼의 솔밭. 언뜻 보아도 2000㎡는 넘어 보이는 공간이 완벽하게 비어 있다. 

찻집 들어앉은 마당은 꽃과 나무, 벤치 등이 어깨를 맞대고 있어 아담하다. 반면 대웅전 서 있는 ‘허공 도량’은 주변 숲과 어우러져 정결하다. 비어 있으나 꽉 찬 묘미가 돋보이는 절이다. 

마야사 카페 전경.
마야사 카페 전경.

사천에서 태어난 아이는 방학만 되면 창녕의 외숙모댁에서 살다시피 했다. 신심 돈독한 어머니와 외숙모 따라 마을에서 가까운 청련암, 삼성암, 관룡사에 자주 가곤했다. 어려서부터 멸치 하나라도 들어간 반찬은 입에 대지 않고, 산에만 오르면 목탁 치듯 나무 두드리며 염불 흉내 내고, 절에서 어찌 들었는지 ‘천수경’ 정도는 금세 외워버렸던 소년. 스님들이 무척 좋아 했더랬다. 

“우리 절이 낳은 인재야 인재!”

10대 중반에 접어들어 이두(二斗) 스님의 ‘향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책 한 권을 품에 안았다. 

“도(道) 높은 스님이 엿장수를 하다니! 멋지다.” 

육도만행 원력을 세웠던 이두 스님은 전라도 일대에서 엿장수와 걸인생활을 한 바 있다.(1962) 이두 스님의 첫 시집 ‘겨울 빗소리’도 가슴에 담아두었다. 3남3녀의 막내, 10대 후반에 이르러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출가하겠습니다!”

‘그리할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반대도 없었다. 스산한 바람 부는 겨울 길목에서 길을 떠났다. 사하촌에 이르러 호빵 하나, 초콜릿 한 개 맛있게 먹고 산문으로 들어서고는 당대 선지식이자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월암이두(月庵二斗, 1929∼2017)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청주 관음사에서 이두 스님을 15년간 시봉했던 현진(玄眞) 스님은 청주 상당구에 마야사(摩耶寺)를 창건했다.(2012, 10)

양 옆으로 쭉 뻗은 감나무 가지 아래에 계단을 두었다.

전통 가람 배치에서 벗어난 절이지만 결코 하루아침에 조성된 절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서 있지 않아 보인다.

“처음 이곳과 인연 맺었을 때 울창한 나무가 참 좋았습니다. 절 입구의 참나무, 뒷길의 벚나무, 울타리로 서 있는 주목, 뒤뜰의 감나무,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두충나무, 그 나무들이 제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절터보다는 나무가 좋아 절을 세운 셈이다. 그러고 보니 그 나무들, 불사(佛事) 때 베어나가지 않고 올곧이 살아 있다. 

“나무는 제 스스로 키를 키우는데도 속성식 건너뛰기는 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눈금을 하나씩 정확히 건너갑니다. 아름 들이 나무가 지나왔을 그 긴 시간의 터널을 생각하면 함부로 벨 수 없었지요. 마야사에 바랑 내려놓은 직후 단풍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반송 등을 심었습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저 나무들은 허락 받은 세월을 묵묵히 살아갈 겁니다. 돌 하나 놓아두고도 자주 바라보았습니다. ‘여기가 맞나?’ 봄에는 저 곳이 어울린 듯했는데, 가을에는 이쪽이 어울려요!”

작은 석불, 정원석 하나, 나무 한 그루도 그냥 놓아두고 심은 게 아니었다. 창건 후부터 지금까지 7년의 ‘시간 눈금’을 하나씩 정확히 건너가며 손수 보듬은 산거(山居)의 도반들이다. 도량 곳곳에 정갈함이 배인 연유를 알겠다. 

해인사에서 포교국장 소임을 보던 현진 스님은 수련회나 템플스테이가 대중 곁으로 다가 갈 수 있도록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청주 관음사에 머무를 때는 어린이불교학교, 한문학당, 충북대학생불교연합회, 충북불자예술인협회, 군인법회 등 계층별 포교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다. 디지털 포교의 중요성을 감지하고는 사이버 법당의 문을 발 빠르게 연 장본이기도 하다. 청주불교방송에서는 3년간 매일 ‘우암산 전망대’를 진행하며 부처님 법을 폈던 현진 스님이다. 그런데, 마하사에 머물면서는 산문 밖 일을 다 내려놓았다. ‘은둔의 삶’을 지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자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게 무엇인가?’ 저 만치서 핀 들꽃은 이웃 꽃과 다투지 않고도 자신의 향기를 피워냅니다. 우리도 자기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향기를 조화롭게 드러낸다면 그 또한 맑고 향기로운 삶이라 봅니다. 성을 쌓다 남은 돌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번거로운 일들은 멀리 하고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솔숲에서 바라 본 대웅전.

아침이면 한 시간 동안 풀 뽑고, 몇년 전 심어 놓은 백일홍은 잘 크고 있는지 살피고, 그러다 절 찾아 온 사람 있으면 미소로 반긴다.   

“뜰의 매화와 산수유가 제일 먼저 봄의 신비를 풀어 놓습니다. 그 꽃들 들여다 볼 때마다 메마른 마음에 수액이 흐르는 기분입니다. 여름 숲 깨어나면 온갖 나무들이 연둣빛 물감을 마음껏 풀어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를 남깁니다. 가을 산책길에 밤 줍다보면 호주머니는 금방 불룩해집니다. 눈 내린 마야사를 마주하면 영락없는 산사(山寺)임을 깨닫습니다.”

호미와 삽을 들고 있는 시간이 많은 현진 스님이지만 결코 목탁을 놓지 않는다.

마야사는 법문과 기도를 포함한 불공의식을 1시간30분 이상 넘기지 않는다. 더 길어지면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공양시간과 차담을 여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신행은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게 현진 스님의 지론이다. 그 언젠가는 동지법회를 준비하며 기계 하나 들여 와 ‘붕어빵’을 구워 내었는데 ‘대박’이었다. 혜민 스님처럼 ‘저명’한 인사들도 초청하고, 작은 콘서트도 연다. 신도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이유가 있다.  

“불광사를 창건하신 광덕 큰스님은 ‘천막법당이라도 법회가 열리면 불교가 살아 있는 것이고, 단청으로 장엄한 법당일지라도 법회가 열리지 않으면 죽은 불교’라고 일갈하신 바 있습니다. ‘법석이 살아야 불교가 산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역사 속에 박제된 불교냐, 지금 펄떡거리는 생동감 있는 불교냐를 가름하는 건 ‘법석’이라고 봅니다. 같은 주제가 반복되는 법문은 이제 지양되어야 합니다. 대중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들을 늘 연구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은사 이두 스님이 그러했듯, 현진 스님도 ‘글’ 만큼은 곁에 두고 산다. 

해인사승가대학이 발간하는 잡지 중 하나가 ‘차, 화로, 경전’을 뜻하는 ‘다로경권(茶爐經卷)’이다. 주로 차와 인연 깊은 글을 싣는 잡지다. 승가대학 2학년 때 처음 원고지를 마주해 이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반응이 좋았다. 4학년 때 ‘치문일기’를 2년 동안 연재했다. 승가의 일상을 담백하게 전한 ‘삭발하는 날’(2013)의 모본이 ‘치문일기’다. ‘삭발하는 날’에 이어 선보인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2014),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2017)는 ‘마야사 은둔’ 속에서 불교적 지성의 프리즘을 통과시켜 얻은 사유의 단편들이다. 책에는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 중도(中道)적 삶의 중요성, 자비실현의 갈망이 흐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현진 에세이’가 빛을 발하는 건,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의 가치를 건져냈기 때문이다. 필력만으로는 잡아챌 수 없다. 진솔함과 혜안을 가진 사람의 눈에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아직 ‘현진 에세이’라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제 삶의 기록’ 정도로 해두고 싶습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 하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생의 찬미’를 부르자는 겁니다. 행복은 먼 훗날의 목표가 아니라, 당장 발견해야 할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내일의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현재의 행복 조건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현진 스님은 마야사에 머물며 집필에도 매진하고 있다.

마야사 나무도 제 자리를 찾았으니 더 이상의 불사는 없을 듯하다.

“하나 더 있습니다. 마야사보다 훨씬 작은, 지금보다 생활시설이 불편한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나마 갖고 있는 ‘주지’ 소임도 내려놓고 자신만의 ‘시간 눈금’을 건너가고자 함이요, 은둔보다 더 깊은 침묵의 뿌리를 심중에 내리고자 함일 터다. ‘생의 마지막 수행’이라고 해야 할까? 현진 스님은 미소만 보인다. 

“그곳에서도 삭발은 제 손으로 할 겁니다.”

서너일만 넘겨도 삭도를 잡는다는 현진 스님. ‘삭발하는 날’의 한 대목이 스쳐간다.

‘내게 삭발은 놓을 수 없는 수행의 한 부분이며 늘 챙겨야 하는 화두 같은 것이다. 얼렁뚱땅 살고 싶을 때마다 한 번씩 머리를 만지면서 다짐하고 나를 깨운다. “그렇지. 나는 욕락을 버리고 출가한 사문이야.”’

마야사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드렸다.

“그런 거창한 말 저는 모릅니다. 어느 날, 내 살던 이곳을 떠나더라도 봄비 지나간 뜨락의 느낌과 같이 고요한 성품을 지닌 수행자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진 스님 여기 있었지!’ 제가 없더라도 차 한 잔 들고 유유히 산책하시기 바랍니다.”

현진 스님이 써 내려간 글과, 마야사에 가꿔놓은 꽃과 나무를 본 사람은 지금도 읽어 낼 것이다. 차 한 잔 들고 유유히 산책하라는 건 ‘공성(空性) 속 평온에 젖어 보라’는 뜻임을 말이다. 현진 스님이 절에 여백을 남겨 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불자들이 지침으로 삼을만한 글귀 하나를 청했다.
  
말의 화살을(言出如箭)
가벼이 던지지 말라(不可輕發).
한 번 사람에게 박히면(一入人耳)
힘으로는 빼낼 수 없다(有力難拔).

“침묵의 시간을 갖지 않고는 내면의 정화가 되지 않습니다. 하여 침묵의 체로 거르지 않은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합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마치 칼을 함부로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시기를 청합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현진 스님은

- 경남 사천 출생.
- 이두 스님 은사로 출가.
- 해인사승가대학 졸업.
- 송광사 율원 졸업. 
-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 법보종찰 해인사 포교국장 역임.
- 법주사 수련원장.
- 월간 ‘해인’ 편집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역임.
- 관음사 주지 역임.
현재 마야사에서 반농반선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잼있는 스님이야기’ ‘산문, 치인리 십번지’ ‘두 번째 출가’ ‘오늘이 전부다’ ‘삭발하는 날’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등 다수가 있다.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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