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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실지견(如實知見)

한국불교를 둘러싼 허상들

대학시절 수행이 깊은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폭설이 쏟아지던 한겨울, 텐트와 침낭을 들고 소백산에 들어가 49일 만에 깨달음을 얻겠다고 호기를 부리던 시절이었다. 수행에 조금 진척이 있어 대학을 완전히 접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돌아왔다. “수행은 호구지책이 될 수는 없다. 먹고사는 것은 노동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날로 대학에 복귀했다. 수행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환상을 버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여전히 한국불교를 휩쓸고 있다. 깨달음만 얻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라는 황당한 기대감이다. 수행을 해도 육신이 있는 이상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행은 고통의 근원을 깨달아 벗어나는 것이지, 생로병사라는 현상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노령화되면서 승가의 노령화도 심각하다. 고령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는 큰스님의 소식도 간간히 들린다. 그러나 숨기기에 급급하다. 도인이 치매에 걸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는 수행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프면 약을 먹듯이 치료 받아야 할 질병이다. 숨기고 감춰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부처님은 신통을 경계하셨다. 수행에 장애로 봤기 때문이다. 수행한 사람이 치매에 걸리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은 전도몽상이다. 오히려 그 모습을 통해 삶의 진실과 욕망의 부질없음을 여실히 바라봐야 한다.

요즘 승가는 고령화에 따른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치매 같은 질병을 앓는 스님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숨기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양시설과 병원 확충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팔정도의 첫 번째 덕목이 정견(正見)이다. 불교도, 수행도 오로지 바른 견해로부터 시작된다. 꼭 치매뿐만 아니다. 불교를 둘러싼 온갖 허상들도 벗겨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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