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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한일 불교계의 역할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움직이는 대표적 조직은 1997년 설립된 ‘일본회의(日本會議)’다. 전국 지부는 물론 영향력 있는 정치, 기업, 교육계 인사들이 여기에 속해 있다. 이 조직은 일본 왕에 대한 충성, 평화헌법 개정, 야스쿠니신사 참배, 자위대 해외 파병, 애국교육을 주장하며, 군국주의 시기 만연했던 대일본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전 조직은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다. 이 양자에는 종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임제종을 비롯한 불교계 교단, 명치신궁과 같은 신도계, 생장의 집이나 불소호념회 같은 신종교 계열이다. 그들이 정신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곳은 일본왕실의 조상신이 안치된 이세신궁이다.

일본회의 회원들은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대 침략전쟁을 비롯한 한반도 식민지지배의 불법성과 야만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근대 제국주의 시기 자신들도 당연히 그 대열에 동참해 합법적으로 이웃을 강탈했으므로 힘의 논리에 의한 정당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는 한국에게 이제는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심지어는 믿지 못할 나라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전후처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더구나 종교계가 나서서 일본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이웃나라와의 호혜적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행위는 용납이 안 된다. 일본의 종교, 특히 불교계 종조들은 그렇지 않았다. 권력의 칼날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정자들이 잘못 갈 때는 민중들의 편에 서서 일갈했다. 대표적으로 일련종의 조사 니치렌(日蓮)은 “이 일본의 일체중생을 위해서는 석가불은 주(主)이며, 스승이며, 부모다. 천신(天神) 7대, 지신(地神) 5대, 인왕(人王) 90대의 신과 왕조차도 오히려 석가불의 신하다. 어찌 하물며 그 신이나 왕의 권속 등이야”(‘묘법비구니에게 보내는 답신’에서)라고 설한다. 천신, 지신, 인왕의 대수는 일본왕실의 계보를 말한다. 이 얼마나 당찬 목소리인가. 니치렌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수차례 죽음의 경계에까지 갔다.

올봄에 독립기념관에서 구마모토의 승려일행에게 근대 한일불교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왜 일본의 불교계는 패망 후 모두 철수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불교계가 국가에 종속되었으며, 정치적 우산 속에서 자신의 해외포교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일본불교가 불교정신을 제대로 발휘하고, 이 땅의 민중들에게 감화를 주었다면, 오히려 국가가 망했어도 당당히 남아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이웃에게 고통을 준 국가 대신 참회함으로써 종교로서의 위상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종조의 정신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일본불교의 핵심인 중세 신불교 교단들은 고대 왕권이 몰락하면서 무사계급이 등장하는 12세기 무렵부터 등장했다. 기존의 대교단들은 정쟁에 휘말려 중생구제는 아랑곳없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법 또한 중생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피어난 것이다. 그러나 교세가 커지고 교단이 권력화되면 문화재나 관리하며, 전변(轉變)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역할로 돌아선다. 나아가 민중의 애환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에 골몰한다. 근대 일본불교는 심지어 전쟁을 합리화한 전시교학(戰時敎學)을 창안해 전쟁터에 자신의 신도들을 몰아넣었다. 불법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수의 불교인들은 정의와 평화의 재단에 목숨을 바치며,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 위정자들의 탐욕에 항거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 일본불교계야말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진정한 선린과 우호의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같은 부처님의 후손들로서 한국불교계 또한 양심적인 일본불교인들과 함께 연대하여 일본의 정치인들이 자리이타의 대승정신을 구현하도록 응원해야 한다. 불법은 국가를 초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의 보고(寶庫)임을 이 기회에 증명해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503호 / 2019년 9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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