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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명색(名色)과 오온(五蘊)

기자명 현진 스님

‘명색이~’ 말은 불완전한 상태 의미하는 불교용어

오온, ‘나’란 무엇인가의 답변
나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일 뿐
12연기 중 불완전상태인 명색도
‘무아’임을 일깨워주는 가르침

유사 이래 불교의 나라였기에 일상생활의 말 가운데 녹아있는 불교용어가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익히 쓰던 어느 한 단어가 새롭게 확인되는 순간 ‘이 말도 그랬나?’라며 자못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생활 속의 불교용어는 대부분 한문에 기반하고 있는데, 최소한 일상생활의 용어인 경우엔 이미 의미만 충분히 전달되었으면 굳이 그 단어의 한문이 어떤지, 특히 불교의 교리적인 내용이 어떻게 담겨있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불교도이자 불제자라면 정말 다반사로 사용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인 ‘명색(名色)’에 대해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명색이 남잔데,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명색이 법보신문 원곤데…’라는 등으로 흔히 쓰이는 ‘명색’에는 주요 교리인 ‘오온’이 담겨있고 ‘연기’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명색(名色)에서 ‘명’은 형체가 없이 이름만으로 된 정신적인 측면이요 ‘색’은 일정한 형체를 갖춘 물질적인 측면을 말한다. 이를 오온과 대비하면 색은 당연히 오온(五蘊) 가운데 색(色)과 동일한 것이며, 명은 그 나머지인 수상행식(受想行識)에 해당한다. 그리고 연기(緣起)에선 십이연기의 네 번째 단계가 이것과 명칭도 동일한 ‘명색’이다.

오온은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다. 우리가 ‘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결국 육신[色]이거나 감수작용[受]이거나 표상작용[想]이거나 마음작용[行]이거나 인식작용[識]일 뿐인데, 그 다섯 가지 유형이 반복되어 쌓이다[蘊]보면 그 각각을 내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색수상행식이라는 이 다섯 가지는 그 순서가 그냥 발음 편한대로 열거해놓은 것이 아니다.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인지력의 차이나 사고의 성숙도에 따라 초기 단계에선 반복적으로 느끼는 이 몸[色蘊]을 나 자신이라 여기다가, 나아가선 거듭되는 인식작용[識蘊]을 나 자신이라 여기기까지, 다섯 단계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몸이건 감수 내지 인식 등의 작용이건 그 어느 것도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참된 ‘나’라고 할 만한 것으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무명을 시작으로 하는 십이연기에서 명색의 앞 세 단계인 무명­행­식은 전생에 해당하고 명색 이후의 여덟 단계는 금생에 전개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명색은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가? 우리는 전생의 결과가 응축되어 형성된 식(識)에 근거하여 새롭게 수태(受胎)가 이뤄진다고 보는데, 수태 직후부터 태아로 태어나기 직전까지가 명색에 해당된다. 사람은 태아의 상태에서 벗어나 태어나야만 육근(六根)이 온전히 갖추어져서 수상행식의 작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명색이라 일컬어지는 태아의 단계에선 육근이 미처 형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이기에 아직 사람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명색이 양반인데…’라고 말할 때의 명색이란 표현은, 내가 양반의 허울만 있을 뿐 실제 내용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어찌 들으면 양반으로서 갖추어야 될 것은 모두 갖추었다는 의미인 것도 같지만, 명색이란 말이 불교용어로서 정의된 뜻을 살펴보면 그것이 오온으로 설명되든 연기의 네 번째 단계로 설명되든 어느 경우에도 실체가 없다거나 불완전하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다섯 가지 쌓임[五蘊]을 나 자신이라 착각하는 것이나, 미숙한 상태인 태아를 온전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나, 내가 명색이 무엇입네~ 하며 거들먹거리는 것이나, 그 어느 것도 실다운 것은 없다. 결국 이는 모든 것이 무아[諸法無我]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눈높이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3호 / 2019년 9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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