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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새로 선출될 전국비구니회장에게 바란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09.06 19:28
  • 수정 2019.09.09 13:10
  • 호수 1504
  • 댓글 1

여성긴급전화 1366경북센터장 진원 스님

세계 유례없는 여성성직자 단체
뚜렷한 비전·철학 소극적 행보
시대적 발맞춰 미래로 나가야

성평등 정책개발·위원회 설립 등
인권 시대 걸맞는 정책들 절실
재가여성불자 연대도 고민해야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제12대 회장 선거를 앞두고 여성긴급전화 1366경북센터장 진원 스님이 종단 내 성평등 확립을 위한 전국비구니회의 역할을 담은 기고를 보내왔다. 진원 스님은 “전국비구니회가 선거를 계기로 장기적인 비전과 실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며 젠더가치관에 기반한 4가지 대안을 제안했다. 편집자주.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이하 비구니회)는 세계에 유례없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여성성직자 단체다. 단일 종교계에서 여성성직자 5000명 이상이 단체를 구성하고 그 정체성을 유지해 온 사례도 흔치 않다. 그럼에도 비구니회는 반세기 역사 속에서 뚜렷한 비전이나 철학, 그리고 세부적인 실천목표를 설정하고 현실화하는 데는 다소 소극적인 행보를 해왔다. 가장 큰 요인은 우리 종단이 기본적으로 비구스님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데 있다.

이제는 비구니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궈내야 할 때다. 세상은 이미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정책적 경계가 없어지고 평등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성의 권익을 육성할 목적으로 시작된 여성 관련 정책은 이미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으로 변화했고, 정치, 사회, 교육, 행정,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관습적으로 남아있는 불평등한 구조나 제도,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도 거세졌다. 비구니회는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비구니회장은 11번 바뀌었다. 그동안 비구니회는 회관을 건립하는 성과를 일궈냈고, 직선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등 주체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제방에 있는 비구니스님들에게 비구니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 비구니스님들을 아우르면서 공감을 얻고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비전과 로드맵을 설정하는데 다소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구니회는 이제 12번째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양 후보의 공약이 대단하다. 비구니스님들의 현안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방향성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어떤 후보든 이번에는 공약의 현실적 실현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다만 아쉬운 대목은 양 후보 중 누구도 공약으로 종단 내 비구·비구니 간의 성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비구니회의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또한 현장에서 활동해 온 한 사람으로 과감히 4가지 제안을 드려보고자 한다.

첫째, 비구니스님들의 권익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가 절실하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은 참정권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사회적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에서 변화의 기폭제는 언제나 참정권 확보였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았지만, 여전히 비구니스님들은 종단의 행정수반인 총무원장, 종회의원, 본사주지(말사 소임자 제외) 선거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선거권이 제한된다는 것은 정책 설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정책 운영과정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소외현상이 해결되지 않은 채 비구니 교구본사를 만든다고 한들,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나뭇가지만 손질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비구니회는 비구니스님들이 종단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한 축임을 인식하는 디딤돌로서 참정권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성평등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비구·비구니를 동등한 관점에서 살펴 불평등을 평등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관습적으로 당연시돼 온 불평등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구니회 차원에서 교육과 수행도량, 기회의 균등 등을 통해 비구니스님들의 능력을 키워내야 한다. 이를 통해 활동의 폭을 넓히고 사회에 참여하며, 통제받지 않고 존중받아야 한다.

셋째, 성평등 위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 2018년 한 해는 ‘미투(me too)’가 사회적 화두였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던 성폭력, 성차별 문제가 피해자들의 호소를 통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우리 종단뿐 아니라 모든 종교계가 미투의 광풍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종단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 대단히 미숙하다는 점이 새삼 드러났다. 이는 종단의 기반을 흔드는 취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권의 시대이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 비구·비구니, 여성·남성이 어디 있겠는가. 성차별,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성희롱 문제는 당연히 인권의 문제다. 이를 인권이 아닌 성적인 잣대로 다룬다면 이러한 일들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1366경북센터장 진원 스님.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자의 95%는 여성들이다. 여성인 비구니가 여성의 문제에 민감하지 않는다면 대사회활동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중생구제는 요원한 것이다. 때문에 비구니회가 앞장서서 교단 내 성평등위원회가 설치, 운영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되고 본연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종단의 미래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토대가 될 것이다.

넷째, 재가여성불자와의 연대다. 대사회적인 활동은 돈으로만 할 수 없다. 비구니스님들 만으로도 어렵다. ‘누구와 손을 잡고 협력할 것인가’ ‘어떤 정보를 주고받을 것인가’ ‘어떤 정보를 어디에서 수집하고 활용할 것인가’ 등이 대사회활동의 핵심이다. 재가 여성불자들이 바로 이에 대한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재가 여성불자와 비구니스님간 연대의 깊이와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긴밀하고 적절한 연대는 양측의 동반성장과 역량 확장을 꾀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번 12대 회장 선거에 거는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젊은 비구니스님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50년을 토대로, 미래 50년을 위한 비구니회의 비전과 철학, 실천적 행보를 위한 정책과 전략이 잘 수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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