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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 인간을 제소하다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9.18 11:17
  • 수정 2019.09.23 11:37
  • 호수 1505
  • 댓글 1

불전에는 개·소가 인간 고소
도움 받은 동물은 인간 변론
살육의 음식문화 성찰 절실

최근 파주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10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돼 유럽과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된 이 병은 지난해 8월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 아시아로 급격히 퍼졌다. 특히 베트남에서 올해만 470만 마리가 도살됐고, 국내에서도 10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2010년 돼지 구제역으로 120만 마리가 땅속에 묻혔고 아프리카돼지열방 발생한 9월17일에만 3950마리의 돼지가 도살됐다. 사안이 중대하다보니 이와 관련된 뉴스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돼지 농장 운영자들의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돼지들의 삶 자체가 ‘먹거리’로 전락했다지만 이들의 입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돼지 한 마리가 전염병에 걸렸다 하여 영문도 모르는 채 덩달아 죽어야하는 것은 돼지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고 재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수 있다.

불전에는 흥미롭게도 인간을 제소한 동물들 얘기가 나온다. ‘십송율’(제3송 제1권)에 등장하는 개가 그렇다. 사위성에 사는 개 한 마리가 다른 집에 가서 밥을 빌었다. 그 개는 몸을 문 안에 넣고 꼬리는 문밖에 두었다. 그때 나타난 집주인이 때리기만 하고 밥을 주지 않자 개는 관청으로 가서 그를 고소했다. 자신은 결단코 개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는데 집주인이 밥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때렸다는 것이다. 이에 여러 관리들은 개가 밥을 얻어먹는 데에도 법도가 있느냐고 물었다. 개는 자기 집에서는 마음대로 앉고 편히 누울 수 있지만 남의 집에 갔을 때는 몸은 문안에, 꼬리는 문밖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관리들은 집주인을 불러 그것이 사실이냐고 따져 물었다. 주인이 개를 때렸음을 인정하자 관리들은 개에게 그를 어떻게 처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개는 의외의 답을 한다. 집주인에게 큰 권한을 지닌 ‘대거사의 직’을 줄 것을 요청한다. 이유를 묻는 관리들에게 개는 자신이 옛날 대거사직을 지낼 때 몸과 입으로 나쁜 업을 지어 개로 태어났는데, 저 사람에게 큰 권한이 생긴다면 몹쓸 짓을 훨씬 많이 해서 엄청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모진 행위들이 결코 인과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섬뜩한 얘기라 할 수 있다.

8세기 일본의 교카이(景戒) 스님이 편찬한 ‘일본영이기’에도 동물들이 인간을 상대로 소송하는 얘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7년간 7마리의 소를 죽였으나 나중에는 이를 참회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많은 동물들을 살려주었다. 훗날 그가 죽었을 때 명부에서 죄의 경중을 따졌다. 이때 그에게 죽임을 당한 7마리의 소들이 그를 고소하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꼼짝달싹 못하고 중벌에 처해질 위기에 몰린 그를 구명하고 나선 것은 생전에 그가 살려줬던 동물들이었다. 이들은 변호단을 구성해 그가 살생한 것은 귀신의 요구에 따라 제사를 지냈던 것이니 잘못이 귀신에게 있지 그에게 있지 않다고 항변했다. 열띤 논쟁 끝에 염라대왕은 변호 동물단의 변론을 받아들여 그가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했다.

‘금강반야경집험기’(제1권)에는 국가제사를 담당했던 고위 관리가 명부에 불려가 돼지와 양 등 희생된 동물들과 대질해 끝내 살생의 죄를 받았으며, ‘법원주림’(권제73)에는 벌레를 죽여 벌을 받은 사람의 얘기도 실렸다.

이재형 국장
이재형 국장

불전의 이 같은 얘기들은 인간의 갑질 앞에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동물일지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할 존재들임을 보여준다. 헨리 벤스턴은 동물들에 대해 “우리와 더불어 생과 시간의 그물에 잡힌 다른 종족들, 곧 지구라는 장려한 고해에 갇힌 동료 죄수들”이라고 했다.

사람만 고귀한 것이 아니라 식용으로 분류되는 동물들의 생명도 고귀하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과 치료제가 조속히 개발돼 무고한 생명들의 참사가 그치고, 나아가 육식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mitra@beopbo.com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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