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대중 마음 먼저 읽어야
지도자는 대중 마음 먼저 읽어야
  • 이병두
  • 승인 2019.09.23 13:51
  • 호수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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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거나 “도덕적으로 부끄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들의 변명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본래 법이나 도덕 규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를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대중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까지 미리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은 법이나 도덕 규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가족 해체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숱한 문제들의 배경에는 ‘상대의 마음을 살펴서 배려하는 정서’ 부족이 있을 것인데,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가 이런 사례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착한 생활인이었던 남편 샤를 보바리에게서 ‘사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로돌프와 레옹에 빠져들어 일시 쾌락을 누리지만 결국  무너져 내린 부인 엠마 보바리, 아내가 죽고 파산 상태에 이르러 정신을 못 차리다가 죽어간 샤를 보바리, 그리고 딱딱하고 감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편 카레닌에게 실망하여 원만한 삶을 이어가지 못하다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안나 카레리나.

멋진 사랑을 꿈꾸다 실패한 주인공들을 비참하게 끌고 가는 플로베르와 톨스토이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당시 유럽 여인들이 겪었던 상황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숱한 문제들의 밑바탕과 문제의 답이 보인다.

인정받기 어려운 사랑에 빠졌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엠마의 남편과 안나 카레리나의 남편은 법적‧도덕적으로 잘못이 없었다. 다만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 잘못 때문에 온 가족이 파멸하고 말았다.

‘장아함경’ ‘선생경’(육방례경이라고도 함)에서 부처님은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친족에게’ ‘사용자가 고용인에게’ ‘고용인이 사용자에게’ ‘시주자가 수행자에게’ 그리고 ‘수행자가 시주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친절하게 알려주며, 일방적 상하관계를 강요‧강권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특히 남편에게 “아내를 존경하고, 예의를 다 하며, 솔직하게 대하고, 아내의 권위를 인정하며, 보석 등의 장신구를 선물하라”고 하였으며, 아내에게는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하고, 남편을 친절하게 대하며, 성실하고, 남편의 소득을 잘 보호하라”고 하였는데, 그 바탕에는 상대의 마음을 살펴서 읽고 그가 ‘바라는 바를 맞추어주려고 애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경에서는 부부 사이에서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피고용인 등 사회 전반의 인간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일에서도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600년 전 인도 사회 상황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니 오늘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서는 원만한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점만은 다를 게 없다.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국무위원‧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계 지도자들도 ‘법적‧도덕적’ 책임을 넘어서 국민과 신도 대중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고 그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칫 국민과 신도들에게 외면당하고 큰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톨스토이와 플로베르가 그려낸 19세기 러시아와 프랑스 상황과 다를 바 없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도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한 ‘정서적 책임’ 때문인데, 이것은 가족뿐 아니라 국가와 종교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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