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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마음공부

기자명 이제열

“마음은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명추회요 구절에 불자들 의아
마음 볼 수 없다면 공부는 왜
마음 자체가 실체 없는 공성
수행할 때 마음 집착 말아야

요즘 내가 강의하는 책이 ‘명추회요’다. 송나라 때 고승인 영명연수 선사가 저술한 ‘종경록’ 가운데 요체가 되는 내용들을 제자 회당조심 스님이 선별해 엮은 책이다.

얼마 전 ‘명추회요’를 설명하고 있었다. 내용은 ‘과거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과 미래의 마음은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 부처도 하물며 이렇게 마음을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는데 어찌 사람들이 마음을 보겠는가?’라는 부처님 말씀이었다. 이 구절을 설명하는 도중 한 불자가 질문했다. “불교수행은 마음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 하시면 혼란이 생깁니다.” 그 옆의 불자도 “법사님도 늘 마음을 보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마음을 볼 수 없다면 마음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요?”라며 거들었다.

나는 이 같은 질문에 당연히 수긍했다. 불교는 마음을 중심으로 교리가 펼쳐지고 마음을 보고 마음을 깨닫는 것을 수행과 그 결과로 삼기 때문에 불자들의 의혹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이다.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에서 마음을 관하는 공부가 으뜸가는 공덕임을 설하고 있다. 그런데 ‘명추회요’에서는 ‘마음은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공부하던 불자들이 충분히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는 말씀은 비단 ‘명추회요’에서만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금강경’에서도 ‘삼세심은 불가득’이라 하였고, ‘대승기신론’에서도 ‘미혹한 마음에 의지하여 부처의 마음을 세웠으므로 가히 부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실은 대승경전의 곳곳에서 ‘마음은 볼 수도 없고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 설해져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음은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마음을 관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선 마음을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소멸하였고, 미래의 마음은 생기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찰나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마음을 관하려면 마음이 시간적으로 잠시라도 존재할 틈을 주어야하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비유하면 어린아이가 이미 날아간 총알을 보거나 잡을 수 없고, 아직 발사되지 않은 총알을 보거나 잡을 수 없으며, 지금 날아가는 총알을 보거나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은 볼 수 있거나 얻을 수 없다. 왜 그런가? 마음은 허깨비 같은 환성(幻性)이며 실체가 없는 공성(空性)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이 없는 허상이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을 관하고 마음을 깨달아 얻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허깨비 같은 환상을 본 것이요, 환성을 얻은 것이기에 보았다고 하나 본 것이 아니고, 얻었다고 하나 얻은 것이 아니다. 마치 꿈속의 물건들처럼 일체의 마음이 허망한 것이다. 또한 마음을 본다고 할 때 보아야 할 마음뿐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는 주체 역시 (그게 설혹 지혜라 할지라도) 인연으로 생긴 환성이며 공성이기 때문에 보거나 얻을 수 없다. 보아야 할 마음과 보는 지혜가 모두 실재로 성립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불교에서 가르치는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현재의 마음을 관한다는 말은 대승의 교리에서는 수용하지 않는다. 현재의 마음이라고 할 만한 마음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관하는 수행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마음은 가히 보거나 얻을 수 없다는 이치를 알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마음을 보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볼 수 없는 마음을 보는 것을 수행이라 하고 얻을 수 없는 마음을 얻는 것을 증득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하더라도 마음공부 한다는데 집착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05 / 2019년 9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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