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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피해 사찰 학술조명 더 필요하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19.10.07 11:35
  • 호수 1507
  • 댓글 0

통도사 사중의 원로스님들 사이에서는 의미 있는 구전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영축총림 통도사가 6·25 한국전쟁 당시 부상병을 돌보는 야전병원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통도사 미륵불소조좌상 복장유물 중 하나인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龍華殿彌勒尊佛更造成緣記)를 통해 이 구전은 사실로 밝혀졌다.

이 자료에는 ‘한국전쟁 후 국군 상이병사 3000여명이 통도사에 들어와 1952년 4월12일 퇴거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절에 남아있던 스님들이 부상병 간호에도 힘썼다”는 구전을 감안하면 당시 통도사는 전각, 요사채 등의 공간뿐만 아니라 인력지원에도 적극 나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일이 큰 공덕임을 인지하고 실천해 온 승가이기 때문이다.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전한다. ‘당시 각 법당과 암자가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폐되었고, 용화전 미륵불이 심하게 파손되어 자운율사와 월국선사의 모연 아래 새롭게 조성했다.’ 부상병이 머무는 동안 통도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법당과 암자가 피폐해졌는지는 현재로서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자료를 통해 새삼 떠오르는 건 한국전쟁으로 인한 불교 피해가 생각보다 컸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발간한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총 5권)는 당시의 불교계 피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인데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한국전쟁 당시 불탄 사찰은 약 180개. 그중 3분의 2가 국군과 미군의 군사작전이라는 명목아래 자행됐다는 사실이다. 반면 북한군에 의해 피해본 사찰은 2곳이었다. 

금강산 능선을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을 전멸시키겠다는 이유로 미군 폭격기는 부처님오신날 3일 전 건봉사를 집중 폭격했다. 대웅전과 사명대사 유물, ‘금니 화엄경 권46’ 등의 국보들이 사라졌다. 폭격 후에는 한국군의 최전방 주둔지로 사용됐다. 이 때 전각과 요사채를 떠받치고 있던 목재들이 겨울철 난방용으로 태워졌다. 연천 심원사도 보개산 전투로 도량 곳곳이 훼손됐는데 이 사찰에  주둔한 국군은 그나마 남아있던 전각마저 화목으로 사용했다. 

월정사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1951년 12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밀리자 국군 1사단이 후퇴한다. 이때 작전 지역 내의 민간인 시설물을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사실을 접한 월정사 대중은 전각의 방구들을 모두 파내고 문짝까지 뜯었다. 북한군이나 중국군의 주둔지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면 절을 소각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군은 민간인을 동원해 월정사 전각과 요사채 대부분을 소각했다. 전남 곡성의 관음사도 빨치산의 근거지라는 이유만으로 20동의 전각과 국보 2점까지 태웠다. 

폭격과 소각 작전으로만 문화재가 파괴되고 유실되는 건 아니다. 약탈에 따른 피해규모도 막대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우리나라 해외 유출 문화재 현황’(2009년)에 따르면 세계 18개국이 우리 문화재 10만7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일본은 6만1000여점을 갖고 있다. 그 다음은 미국이다. 조선 말기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의 강대국들이 가져간 문화재는 각국 평균 2000여점이다.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에만도 무려 2만7000여 점을 가져갔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80%를 일본과 미국이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무분별한 폭격과 소각, 약탈에 따른 피해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불교계를 향한 진정어린 사과 한 마디 한 적이 없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도 또 한 번 직시할 수 있었듯이,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 파괴는 한 나라의 정신문화를 송두리째 흔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 나라의 국민이 축적해 온 유무형의 가치를 한 순간에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는 물론 군인들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피해를 줄 일수 있다. 

따라서 6·25 한국전쟁 당시의 불교 문화유산 피해 상황은 더욱 더 면밀하게 밝혀야 하며 그에 따른 학술적 조명이 뒤따라야 한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가 중심이 되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고할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1507호 / 2019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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