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율 어기면서 지혜 얻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김해 세나니승원장 담마다야다 스님

여러 동기로 수행을 시작하지만
전생 업으로 그만두는 사례 많아
지속적 수행 동력 얻기 위해서는
고통 벗어나려는 절박함 있어야

수행 단계에서 가장 기본은 지계
계율 준수할 때 몸·말·행위 청정
계율 청정해야 사마타 수행 가능
마음을 고요히 하는 방법으로는
정기적으로 자애관 수행도 필요

담마다야다 스님은 “수행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면서 “명상수행한 업은 우리에게 큰 유익함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마다야다 스님은 “수행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면서 “명상수행한 업은 우리에게 큰 유익함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은 수행을 왜 하려고 하는가, 또는 왜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먼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문제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수행을 해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수행을 하려는 마음을 잘 내지 않지만, 수행을 시작해도 끝까지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얀마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절박함이 없는 사람은 담마(Dhamma)를 구할 생각을 하지 마라.” 

이것은 그만큼 수행을 하려면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동기로 수행을 시작하지만 진행해 가는 과정에 항상 수행이 잘되지만 은 않습니다. 오랜 윤회를 하면서 우리가 수많은 선업을 짓기도 하지만 수많은 불선업도 지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로운 업이 장애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들이지 않은 마음으로 윤회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습관을 바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행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절박함이 생기는 요인으로 무엇이 있겠습니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보는 것, 현생에 생계를 유지하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괴로움, 이러한 것들을 보고 우리는 절박함을 느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경전에서, 싫은 사람과 같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흘린 눈물이 사대양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 자매가 죽어서 흘린 눈물이 사대양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 한때는 소로 태어나고 염소로, 양으로, 개로 태어나서 죽임을 당해 흘린 피가 사대양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 일겁 동안 태어나고 죽으면서 남긴 뼈 무더기가 웨풀라산과 비슷하다, 웨풀라산은 부처님 당시 라자가하를 둘러싼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늙는 것, 윤회를 염오(厭惡)해야 한다. 싫어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절박함이 없으면 수행을 시작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동력을 점점 잃어버립니다. 수행하고자 하는 열의가 희박해집니다. 수행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수행을 왜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있으면 수행을 잘하고 못하고는 다음 문제가 됩니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확신이 있고, 열의가 있으면 많은 장애를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만 갖고 있고, 하고자 하는 열의나 방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중간에 장애가 나타났을 때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수행자가 수행의 기술적인 면만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든지 수행을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수행에 접근하면 더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순차적이고 체계적입니다. 계율을 먼저 준수하고, 그다음에 삼매를 닦고 지혜를 닦습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먼저 계를 청정히 해야 합니다. 살생하면 자신의 명이 단축되고 병약하게 태어나고 여러 존재로부터 적대감이 생기겠지요. 살생하면 과보에 의해서 죽은 존재들이 자신의 주위에 다시 태어나서 자신에게 좋은 기운을 보낼 리가 없겠지요. 반대로 살생을 하지 않으면 명대로 살고 건강하게 다음 생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재산에 손실이 생기고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이익을 볼 수 없으며 의식주, 약품 이런 것들이 필요할 때 제때 얻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 계율을 잘 준수하면 부유함이 따라올 것입니다. 

잘못된 성행위를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고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중성, 양성으로 태어나며 성질이 사나워질 수 있고 여러 불이익이 있습니다. 이 계율을 잘 지키면 여러 가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 선의의 거짓말도 포함됩니다. 이 계율을 어기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영향력이 없고 시력, 청력이 좋지 않고 반대로 이 계율을 잘 지키면 좋은 과보를 받습니다.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마약을 먹으면 일단 몸이 병들고 도덕적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지고 은혜를 모르게 되고 지혜 없이 태어납니다. 정신병자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 계율을 잘 준수하면 지혜롭게 태어날 수 있겠지요. 

여섯 번째 계율은 때 아닌 때 음식을 먹는 것, 일곱 번째는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화환을 두르고 향수, 화장 이런 것들을 삼가는 것, 여덟 번째는 높거나 화려한 침상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는 것입니다. 

계율을 잘 준수할수록 몸 행위와 말 행위가 청정하게 되겠지요. 반면 정신적 행위, 마음의 행위는 여전히 청정하지 않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거친 행위로 인해서 정신적인 불순함을 잘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과 말 행위가 정화되면 그동안 잘 감지하지 못했던 정신적 불순함이 더 잘 드러납니다. 

그때 붓다께서는 그다음 단계인 수행할 단계가 되었다며 수행자들에게 사마타(samatha) 수행을 가르칩니다. 사마타 수행은 정신적 행위, 마음 행위를 정화하고 청정히 하는 단계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마타 수행을 하게 될까요? 붓다께서는 “비구들이며, 삼매를 닦아라. 삼매를 닦은 비구는 법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법은 ‘사성제(四聖諦)’가 되겠지요. 지혜 수행을 하려면 사마타가 바탕이 됩니다. 

간략하게 사마타 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자세는 편하게 오래 앉을 수 있는 자세가 좋습니다. 뒤를 약간 높여서 허리가 약간 들어가면 좋겠지요. 

숨은 태어난 이래로 숨을 쉬어 왔습니다. 그 숨을 그대로 놓아두고 콧구멍을 통해서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그 숨을 아는 것입니다. 그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코끝과 윗입술 사이에서 어딘가에서 스치면서 들어오고 나갑니다. 스치는 지점에서 들숨과 날숨 또는 숨이라고 알면 됩니다. 그런데 스치면서 지수화풍 사대의 특성들이 일어납니다. 단단함, 거침, 무거움, 가벼움, 열감, 차가움, 유동성, 응집성, 밈, 지탱함, 이러한 특성들이 일어나면서 숨이 지나간다고 알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특성 자체가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을 잘하기 위한, 특히 들숨과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잘하기 위해서는 고요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숨 자체가 미세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거나 동요하거나 욕망이 있거나 애착이 있으면 대상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고요히 하는 방법으로 자애관(慈愛觀)을 하면 좋습니다. 자신에게 내가 안녕하고 행복하기를 2~3분 정도 자애를 보냅니다. 자신이 행복했던 때, 웃는 모습, 성공할 때, 어떤 좋은 행위를 했을 때, 이러한 것을 떠올리면서 자신에게 자애를 보냅니다.  

그다음으로 필요하다면 자신과 무관한 분,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해보면 자애 삼매를 얻지 못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겠지요. 매일 하면 변화와 발전이 있고 우리의 업을 유익한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하기 전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자애관을 하고, 고요해졌다 싶으면 그때 자애관을 그만하고 들숨과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하면 되겠습니다. 

마음이 떠돌 때, 들숨 날숨이 아니고 다른 대상을 계속 취할 때는 따라가지 말고 바로 숨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것이 마음 훈련을 하는 방법입니다. 왜 마음 훈련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목표가 삼매를 닦는 것이지요. 삼매를 닦아야 법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삼매를 못 얻더라도 여러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생을 마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조용히 마감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물에 빠져 죽는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죽는다고 합니다. 그때는 마음을 통제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번 생에 아라한이 되지 못한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다음 생에 태어나야 합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는 원리는 죽기 직전에 마음이 취한 대상에 따라 선처에 나느냐 악처에 나느냐가 결정됩니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는 상태에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살아있을 때 젊을 때 건강할 때 수행을 하면 마음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수행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큰 의지처이고 마치 보험에 드는 것과 같습니다. 계율을 준수하고 보시하고 명상 수행한 업은 그림자처럼 따라오기 때문에 다음 생에 우리에게 큰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다른 대상으로 가면 명상 대상으로 돌아오는 훈련, 이렇게 되면 죽기 직전에 명상 대상을 취하면서 생을 마감하면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세나니승원장 담마다야다 스님이 지난 9월12일 김해 세나니승원에서 열린 제36차 집중수행에서 입재법문으로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07호 / 2019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