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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문덕수의 ‘전생설화’

기자명 김형중

욕망 불길에 타 죽은 지귀 설화 인용
감동·재미를 더해 아내에 바친 헌시

자신을 복술강아지에 비유해
한편 영화 보는 듯 재미있게
아내와 깊은 인연 노래한 시
연모와 사랑의 부부인연 읊어

그땐 나는 강아지였지.
목화(木花)송이 같은 한 마리 복술강아지였지.
그땐 당신은 목련(木蓮)꽃이었지.
그땐 구름도 당신을 닮아 목련꽃으로 피고
맑은 냇물도 목련꽃 빛으로 흐르고
죽은 바윗돌에선 목련꽃의 싹이 트고
나는 목련꽃 빛의 복술강아지였지.
그땐 나는 온몸이 달아
쇳덩이도 녹일 듯이 온몸이 달아
꽃나무를 위성(衛星)처럼 한 천 번쯤 돌다가
미친 듯이 문득 날아오를 듯
솟구치곤 하다가 떨어져 떨어져
꽃나무를 안은 채 타서 죽었지.
목련꽃같이 핀 이승의 당신
먼 전생의 전생 때부터 
나는 당신을 찾아 헤맨 짐승이었지.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보다 많은 사람 중에서 오직 한 사람 내 곁에서 한 집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함께 살고 있다. 맹귀우목의 인연, 반석겁의 인연. 겨자겁의 인연 등으로 표현되는 억겁의 인연이다. 

문덕수(1928~현재) 시인의 ‘전생설화’는 젊은 시절 미치도록 사랑한 아내와의 사랑을 주제로 읊은 사랑의 노래이다. 아내는 ‘하얀 목련꽃’이었고, 자신은 목련꽃의 하얀빛을 닮은 ‘복술 강아지’였다고 노래하고 있다. “나는 목련꽃 빛의 복술강아지였지/ 그땐 나는 온몸이 달아/ 쇳덩이도 녹일 듯이 온몸이 달아/ 꽃나무를 위성(衛星)처럼 한 천 번쯤 돌다가/ 미친 듯이 문득 날아오를 듯/ 솟구치곤 하다가 떨어져 / 꽃나무를 안은 채 타서 죽었지” 

신라 선덕여왕을 연모하다가 영묘사 탑에서 욕망의 불길이 몸에서 치솟아 불에 타서 죽은 ‘지귀(志鬼)’의 설화를 인용하여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읊은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의 헌사(獻詞)이다. 시가 쉽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있으면서도 아내와의 깊은 인연을 노래한 새로운 시 형식을 시도한 창조적인 시이다.

불교의 ‘대지도론’에 삼독심(三毒心) 가운데 욕망의 불길을 경계하는 예화로 ‘술파가의 설화’가 나온다. 술파가가 여왕을 흠모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여왕이 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고 갔다. 잠에서 깨어난 술파가는 욕망의 불길을 참지 못하고 몸에서 불길이 치솟아 불에 타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시인은 자신이 전생에 아름다운 목련화 같은 여인을 하루에도 천 번을 연모하다가 목련나무를 보듬고 타죽은 지귀와 술파가였다고 읊고 있다.

석가모니의 ‘전생담’에도 ‘칠경화의 설화’가 나온다. 구이선녀가 선혜선인과 인연을 맺기 위하여 칠경화 일곱 송이를 연등불께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는데 그들이 석가모니와 야쇼다라부인이다.

시인은 아내를 향하여 이렇게 결구하고 있다. “목련꽃같이 이승에 핀 당신/ 먼 전생의 전생 때부터/ 나는 당신을 찾아 헤맨 짐승이었지” 짐승은 원초적 본능뿐이다. 오직 한 생각으로 아내만을 연모한 당신의 종 즉, 복술강아지라고 하였다. 지독한 연모이고 사랑의 인연이다. 이것이 부부의 인연이다.

문덕수의 ‘전생설화’를 읽고 필자의 ‘첫사랑 전설’이 떠올라 적어본다.

“소년은 벼락천둥이 치는 날/ 달군 몸뚱이 식히려고 빗속을 달렸네/ 백구가 불덩이를 물고 발광했던 첫사랑/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쓸쓸한 소녀”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ililsihoil1026@hanmail.net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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