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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스님 묵향에 한일 갈등치유 해법 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19.10.22 10:16
  • 수정 2019.10.24 10:15
  • 호수 1509
  • 댓글 1

임진·정유재란 때도
적장·승려들에 전법
지덕 갖춘 선지식의
대 사회 역할의 사표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명유정 스님의 친필·유묵 특별전을 열었다. 일본 교토 교쇼지(興聖寺)와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이다. 전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스님의 선기와 대승보살 정신을 직면할 수 있기에 의미 깊다.

스승인 서산휴정 스님의 문하에서 정진 한 사명유정 스님은 공관을 깨친 후 금강산에서 무애한 삶을 영위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이했다. 처참하게 살육 당하는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승병을 모아 참전했지만 적장마저도 부처님 법으로 다스렸던 사명유정 스님이다.

무장이었던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는 임란 때 사명유정을 처음 만났는데 “금강산의 고승을 만나 기쁘다”며 글씨를 청했다. 그때 지어준 글의 내용은 이렇다. ‘의로움을 바르게 하고, 이익을 꾀하지 않는다. 밝은 데는 해와 달이 있고, 어두운 데는 귀신이 있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은 털끝 하나라도 취하지 말라.’ 조선은 너의 것이 아니니 함부로 탐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일갈이다. 정유재란(1597) 발발 직전인 3월 두 사람은 4차 회담차 다시 조우했다. 회담 중 뜬금없이 가토 기요마사가 물었다. “귀국에도 보물이 있습니까?” 사명유정 스님이 답했다. “당신의 목이 보배이다.” 이후 사명유정 스님은 일본에서 ‘설보화상(說寶和尙)’으로 불렸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승병들과 함께 산성을 지켰던 사명유정 스님은 1604년 서산휴정의 입적 소식을 듣고 묘향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스승 곁에 이를 수는 없었다. 조정의 명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는 조선에 대마도 강화를 요청했다. 

중국 명(明) 나라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고, 일본에 대한 백성들의 정서도 감안하면 그들의 청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 다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던 때였다. 결국 조정은 현안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구하고자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명 스님을 탐적사(探賊使)로 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대마도에 사명 스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해졌다. 그는 “내년에 교토에서 친히 만나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사명 스님은 이듬해인 도쿄로 건너갔다. 이때, 일본의 승려뿐 아니라 하야시 라잔(林羅山) 등 유학의 대가들도 앞다퉈 사명 스님을 친견하고자 했다.   

1605년 3월 후시미죠(伏見城)에서 사명 스님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 자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은 임란 때 출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강화를 제안하며 “조선을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양국의 우호 교류가 가능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사명 스님은 전란 중에 납치되었던 조선인의 송환을 요구했다. 일본은 국교회복의 상징으로 조선통신사 파견을 요청했다. 사명 스님은 1391명을 송환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송환을 요구해 입적하기 전까지 3775명을 쇄환했다. 이후 약 260년 동안 조선과 일본은 평화 국면을 이어갔다. 

전시 작품 중 ‘자순불법록(諮詢佛法錄)’은 사명 스님의 법력을 일본의 승가가 어느 정도 숭상하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사명 스님은 교토의 교쇼지(興聖寺)를 창건 한 엔니 료넨(丹耳了然) 스님에게 무염(無染)이라는 법호를 지어 준 바 있다. 엔니 료젠 스님은 사명 스님에게 선종의 기본 개념과 임제종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달라며 10개의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글(지순불법록)을 보이며 가르침을 청했다. 

임란의 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사명 스님의 대의,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도 법을 전했던 불심, 그리고 상생을 향한 정치적 결단 등을 우리는 이 전시회에서 엿볼 수 있다. 

한일관계가 갈등의 극으로 치닫는 작금의 시대에 사명 스님의 묵향은 큰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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