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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오캄의 레이저-중

부처님은 유클리드 5공리처럼 오온으로 인간 설명

자연계엔 매순간 무수한 법칙 작용
법칙 하나 발견하기도 매우 어려워
불교에만 있는 무아론은 자연법칙
뇌과학 발달하면서 자연스레 입증

자연계에는 수많은 자연법칙이 있다. 그중 하나라도 발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자연계에는 매순간 동시에 무수한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법칙만 작동하고 다른 법칙들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많은 경우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상태에 진공(眞空 물질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공간에 구멍이 뚫린 듯 진공이 있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이게 사실인지를 조사하는 것은 예전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연계에서 진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독자 여러분은 진공의 예를 들 수 있는가? 1643년 토리첼리(Toricelli)는 긴 유리 튜브에 수은을 가득 넣고 밀폐한 다음 뒤집어 수은이 가득한 그릇에 꼽았다. 튜브 안의 수은은 중력에 의해 어느 정도 아래로 내려가고 수은이 있었던 부분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으로 통하는 길은 유리와 수은으로 막혀 있으므로, 그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다.

높은 곳에서 실험할수록 수은의 높이는 낮아진다. 그릇 안에 있는 수은에 작용하는 중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후에 두 조각이 맞대어 만들어진 속이 진공인 커다란 쇠공을 여러 마리 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어도 분리할 수 없었다. 진공을 향해 작용하는 기압 때문이다. 이 실험을 묘사한 그림이 남아있다. (피스톤을 이용해 실린더 안 공기를 뽑아냄으로써 진공을 만들 수 있다.)

사실은 자연에도 진공이 존재한다. 수중식물 통발은 진공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통발처럼 생긴 주머니의 내부를 진공으로 만든 다음 물고기가 다가오면 입구를 벌린다. 수압 차이에 의해 주머니 속으로 급히 밀려들어가는 물에 물고기도 휩쓸려 들어간다. 옛날 사람들은 이 메커니즘을 알 길이 없었다. 후에 우주여행을 하게 되면서 우주 공간은 거의 진공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즉 자연상태에는 진공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주는 99.9999999프로가 진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려도 너무너무 틀렸다.

다른 예를 들자면, 모든 것이 지구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중력의 영향력 안에 있는 지구상에서 중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학자들은 어떤 자연법칙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실험이나 관측을 한다. 만약에 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양과 질이 예측한 바와 일치하면 그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기존의 다른 자연법칙들과 위배하면 안 된다. 그런 경우는 많은 경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다. 수천 년 만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시대적인 사건이다.

불교에만 있고 다른 종교에는 없는 사상이 무아론(無我論)이다. 사람에게는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영혼이 없다는 사상인데, 부처님 당시에는 딱히 속 시원하게 증명할 길이 없었다. 지난 2,500년간 그랬다. 1960년대에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서 뇌량(腦梁 corpus callosum)을 절단하는 기술이 스페리(Roger W. Sperry)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간질증상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의식이 분리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왼손은 모자를 쓰려 하고 오른 손은 모자를 벗으려고 하는 기이한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다.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독립적인 의식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의식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만약에 다시 뇌량을 연결해 나가면 어느 순간에 두 개의 의식이 사라지고 당신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의식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우리 의식이 무아이고 복합체라는, 즉 고정불변하는 단일체로서의 영혼이 없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영혼이 있다면 좌영혼과 우영혼 둘로 나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영혼은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므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예로는 지렁이와 편충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몸이 둘로 나뉘어도 각자 살아남는다. 그럼 지렁이와 편충의 영혼이 둘로 나뉜 것일까? 무아를 인정하면 이런 난문은 쉽게 풀린다. 아예 처음부터 질문이 생기지를 않는다. 그냥 뇌가 영혼, 즉 영구불변하는 자아라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제7식 말라식이 제8식 알라야식을 자기로 삼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고, 환경에 따라 끝없이 변하고, 환경에 따라 소멸하는 가아(假我)가 있을 뿐이다. 즉 자아는 연기체(緣起體)이다. 소위 연기론(緣起論)이다.

현대에 들어서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뇌에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수많은 부서(모듈)가 많게는 1억 개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뇌의 특정 부위가 망가지면 그 기능만 감쪽같이 사라진다. 변연계가 망가지면 감정(受)이 없어진다. 풍이나 사고로 뇌 신경세포가 망가지면 생각(想)을 하지 못한다. 다른 것은 다 기억하지만, 사람 얼굴만 기억을 못하기도 하고, 사람 이름만 기억(識)하지 못하기도 한다. fMRI(기능성자기공명영상)를 통해서, 우리가 결정을 내렸다고 의식(識)하기 전에, 때로는 자그마치 수초 전에,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소위 행(行 의지)의 작용에 대한 통속적인 이해가 깨진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이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요소의 일시적인 모임일 뿐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부처님은 인간을 유클리드 기하학의 5공리처럼 5온을 이용해 설명한 것이다. 오캄의 레이저이다.) 단지 고집 세고 무지한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참나론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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