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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모두를 위한 설법 그리고 음악, 붓다와 쇼팽

기자명 김준희

음악 대중화 이끈 쇼팽에서 붓다의 설법 연상

19세기초~20세기 아우른 음악의 낭만주의 
특정계층에서 모두를 위한 음악으로 변모
쇼팽, 조국 폴란드 위해 음악 민족주의 실현
차별없이 행한 붓다의 대중화 설법 떠올라 

쇼팽 녹턴 작품 62 자필악보.

19세기는 서구사회에 큰 변화의 물결이 넘치던 시기였다. 근대적 산업화의 초석, 정치적 사회적 변동과 더불어 예술에 있어서도 주체성과 내면의 감정이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대두되었다. 음악 양식으로서의 낭만주의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의 시작까지를 아우른다. 19세기 예술 중 가장 낭만성이 짙은 예술 장르는 단연 음악이었다. 자연, 이국적 풍경, 개인의 의식와 민족주의적 감정들에 기반을 둔 낭만주의 음악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낭만주의는 영어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음악은 낭만주의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수단이었다. 독일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E.T.A. 호프만은 “그 주제의 무한성 때문에 음악이 모든 예술 중 가장 낭만주의적이다”라고 했다.

미국 독립전쟁(1775)과 프랑스혁명(1789)을 거치면서 형성된 도시의 중산층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되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되었다. 19세기의 대중은 다른 예술보다 음악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많은 도시에 연주회장이 건설되고, 도시 관현악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피아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의 응접실에는 피아노가 자리하게 되었다. 한정된 관객과 연주자들만의 음악이 모두를 위한 음악으로 변모되는 시기가 바로 낭만주의 시대였다.

붓다가 죽림정사로 가던 어느 날이었다. 숲에서 잠시 쉬고 있던 붓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옷매무새가 헝클어져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남편과 3대 독자인 아들까지 잃어 비통함을 참을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은 끼사고따미였다. “거룩하신 부처님,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었습니다. 제발 저의 남편과 아이 중 한 명이라도 꼭 살려주십시오.” 이미 품에서 숨을 거둔 아이를 놓지 못하고 울부짖는 끼사고따미에게 붓다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아이를 꼭 살리고 싶으면 이 길로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이 한 번도 죽어 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세 알을 얻어오너라.”

끼사고따미는 붓다의 말에 서둘러 마을로 내려가, 집을 가리지 않고 방문해 겨자씨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찾아간 집 중, 상을 치르지 않은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절망에 쌓여 돌아온 끼사고따미에게 붓다가 물었다. “겨자씨를 구해왔느냐.” “부처님, 저는 오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사랑하는 자를 잃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려고 한 저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붓다는 끼사고따미에게 말했다. “목숨을 가진 중생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드시 꼭 겪어야만 하는 일이다.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을 벗어나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는 붓다의 말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끼사고따미는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붓다는 이렇듯 스스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그 상황에 맞게 그 근기에 따라 가르치고 설법하였다. 
 

라호르박물관 설법도3~4세기.

19세기의 유럽의 도시 중산층은 음악의 거대한 청중일 뿐 아니라, 가정에서 노래와 실내악, 그리고 피아노 연주 등을 하는 ‘음악 소비자’였다. 각 가정에서는 저녁마다 가곡 연주회나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가 이루어지곤 했다. 피아노는 그 자체로 친밀감이 있을 뿐 아니라 무한한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악기였다. 개인 연주자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기에 좋은 피아노는 19세기의 개인의 감정 표현을 중요시 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분위기와 어울려 많은 작곡가들과 청중이 선호하는 악기였다.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규모의 작품과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공존했다.

프레데릭 쇼팽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대부분 피아노곡을 작곡하는데 일생을 바친 쇼팽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먼저 인기를 끈 장르는 왈츠였다. 작은 주제가 빛나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반복되는 형태의 왈츠는 연주회장은 물론이고 소규모 연주회장이나 살롱 음악회에 적합한 장르였다. 작품34의 세 개의 왈츠는 쇼팽의 진지함, 사려 깊음, 발랄한 음악성을 고루 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작품42 Ab장조는 가장 긴 작품으로 쇼팽의 왈츠 중 최고로 손꼽힌다.

‘녹턴’ 또한 쇼팽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장르였다. 두 개의 악상이 교차되어 나오는 작곡법을 좋아했던 쇼팽의 후기 녹턴 작품62의 두 곡은 조용한 사색에 잠기는 듯한 곡으로 살롱 음악회에 적합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두 곡 모두 농익은 화성의 표현이 돋보이며, 특히 첫 번째 곡은 병약하지만 음악에 대한 영감만은 끊임없이 샘솟던 쇼팽의 모습이 담겨있는 듯하다. 

쇼팽이 파리에 머무를 때 사용했던 플레옐 피아노.

쇼팽은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음악활동을 펼쳐나갔지만, 항상 마음 한쪽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폴로네이즈(Poloniase) 작품44 f#단조는 쇼팽의 향수와 감동을 담기에 가장 적합했던 대작이다. 화성적인 짜임새가 두텁고, 음역이 광범위하며 전체적으로 화려한 이 곡은 가장 독창적이고 정열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조국 폴란드의 위대함을 영웅적이고 기사적인 모습으로 폴로네이즈에 담고자 했던 그는 느린 중간 부분에 마주르카(Mazurka)를 삽입했다. 귀족의 춤이었던 폴로네이즈와는 상반된, 소박한 농민의 춤곡인 마주르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민족적인 정서를 담기에 충분했다. 쇼팽은 완벽한 조국 폴란드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고, 음악을 통한 민족주의를 실현시켰다. 모두를 위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붓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법을 설하였다. 적절한 비유와 직면한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수준에 맞춘 붓다의 설법은 논리적이고 간결하여 슬기로운 자들은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었다. 이론과 논리를 좋아하는 말룽끼야뿟따라는 청년은 우주의 시초, 사후세계 등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완전히 알기 전에는 수행하지 않겠다고 강변했다. 붓다는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고자 하는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는 대신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이론에 앞선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낭만주의 시대에는 수백 년간 왕실과 귀족 위주로 향유되었던 서양 클래식 음악이 ‘모두를 위한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쇼팽의 공로가 컸다. 붓다가 설법하는 방식은 은밀한 방법으로 그들만의 가르침을 공유하기 위해 폐쇄적인 행태를 취하던 바라문 계통의 사상가 또는 종교인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으며, 듣는 이의 눈높이에 맞춘 개방적인 설법은 인도 종교사에 있어 최초의 일이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모두를 위한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모두를 위한 붓다의 설법을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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