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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말의 양면성

기자명 박사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시위대와 마주쳤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도 국민이다.” 여기서의 우리란 누구일까. 그것은 한눈에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위대 사람들은 ‘우리’를 만난 기쁨에 한껏 들떠 있었으니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기쁨. 

‘우리’는 좋은 말이다. 자아가 비대할 만큼 비대해져 오직 나, 나, 나 밖에 없는 시대에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리’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를 뜻한다. ‘우리’는 품는 말이고, 친근하게 끌어당기는 말이며,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말이다. “우리 선배”할 때 이 말 속에는 선배를 친근히 여기고 좋아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있다. “우리나라”는 또 어떠한가. 이 나라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전체가 이 말 속에 담겨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용례로도 많이 쓰인다. “우리 부모”할 때의 우리는 한 부모를 가진 형제자매를 모두 일컫는 말이 될 테지만, “우리 남편”할 때의 ‘우리’는 명확하게 한 명만 가리킨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큰일 날 일이다. 그런 경우를 가리켜 사전에서는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남편뿐 아니라 우리 부인, 우리 언니, 우리 형, 우리 고양이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친근함과 포용성,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이 ‘우리’의 특징일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그런 거 절대 용납 못하지” “우리를 뭘로 보고”라고 말할 때의 ‘우리’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때의 ‘우리’는 ‘나’를 크게, 더욱 크게 보여주기 위한 포장의 역할을 맡는다. 이 말에서 자아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하게 자리 잡게 된다. 반대편에는 ‘너희’가 있을 터다. 자신의 자아를 거인으로 키워 자신의 외부에 있는 존재와 대결하게 하려는 의도. 이 안에는 친근함도 포용성도 겸손함도 없다. ‘나’보다 더 비대한 ‘나’, ‘나’보다 더더욱 강력한 ‘나’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울타리'의 ‘울'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 울타리는 그 안의 존재들을 보호하고 소속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밖의 존재들에게는 틈을 주지 않는다. 가차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의견을 ‘우리’로 포장하려는 의도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자칫하면 한 나라를 두 동강이 낼 수도 있는 단어다. 우리라는 말은. 
부처님은 여러 경전에서 스스로를 ‘여래’라고 부른다. 여래는 산스크리트어 타타가타를 번역한 말로, 부처님을 부르는 말인 ‘여래십호’가운데 하나다.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라는 부처님의 이름 중, 여래는 ‘그와 같이 왔다’ ‘있는 그대로 오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법륜 스님은 이를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부처님은 왜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않고 일반명사인 ‘여래’라고 불렀을까? 불교의 근본교리 중 하나는 ‘무아’이다. 이는 ‘만물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처님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깊이 깨달으신 분이고, ‘나’라는 것을 상정하는 순간 경계가 생기고 그 경계에서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던 분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쓰는 언어에는 쓰는 이의 철학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에서 배척과 대결의 의미를 지우고 포용과 연기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모두’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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