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쓸쓸한 스님의 죽음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11.01 21:03
  • 수정 2019.11.03 15:03
  • 호수 1511
  • 댓글 8

중병 걸리면 속가 의탁 많아
병고, 개별스님에 전가 안 돼
승려복지회 정착 등이 대안

10월29일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권모씨가 민원을 제기했다. 충남 아산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속가 형님인 A스님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A스님은 1975년 출가했다. 가족들은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던 A스님을 지켜보는 것이 뿌듯했고 불교에도 자연스레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상황이 뒤바뀐 것은 7년 전 A스님이 뇌경색과 혈액종양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완쾌가 쉽지 않은 병이었다. 입원 초기 사형사제들이 병원비를 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님들 관심도 급격히 멀어져갔다. 지금은 충북의 한 요양원에 머무는 형님을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형편이 넉넉하면 괜찮겠지만 빠듯한 살림에 노모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형님을 돕기 어렵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 병원비 부담으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요양원에 있는 형님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 안타깝다며 30년을 넘게 스님으로 살아온 형님을 종단에서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게 그의 요청이었다.

불교계 언론에 종사하다보면 가슴 아픈 사연들과 마주할 때가 많다. 큰 병을 앓으면서도 치료받지 못한 채 쓸쓸히 세연을 마치는 스님들의 얘기를 전해들을 때 더욱 그렇다. 몇 해 전 동국대병원법당 지도법사 스님을 찾아뵙고 그 스님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원고로 정리하는 일을 맡았던 적이 있다.

당시 정리했던 내용 중 지금까지 잊히는 않는 것이 B스님 사연이었다. B스님은 당시 40대 초반으로 늦깎이 비구스님이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던 스님은 자신이 간암에 걸렸음을 알았고 수술을 위해 일산 동국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B스님은 오래지 않아 대구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문중 어른스님이 대구로 내려와야 수술비를 주겠다고 했단다. B스님은 우연히 알게 돼 찾아온 가족들에게도 자신은 절집문중 사람이니까 병원비 걱정도 문병도 오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암수술을 받은 스님은 간병인도 없이 오랫동안 병실에 방치됐다. 설상가상으로 그 어른 스님이 갑자기 병원비마저 낼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B스님이 감당해야 했던 깊은 절망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술 후 쉬기는커녕 수술비 마련을 위해 당장 부전이라도 살아야 할 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분노했다. 특히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한 스님의 아버지는 “내가 너를 꼭 살리겠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쓰러져 별세하고 말았다.

병원 지도법사 스님이 B스님을 만났을 때는 큰 암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뒤였다. B스님은 병으로 인한 고통뿐 아니라 자신 때문에 부친까지 돌아가셨다는 깊은 자책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도법사 스님은 아침저녁으로 B스님의 병실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해드렸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아침이었다. B스님은 몸을 일으켜 세운 뒤 깊이 고개 숙여 합장하더니 “출가한 이후 내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 건 스님이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던 중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있다며 B스님은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입원한 스님은 “절에서 부모님 천도재를 지내드리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지도법사 스님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는 말과 “다음 생에도 스님으로 살겠다”는 말을 힘겹게 남기고 세연을 마쳤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아무리 뛰어난 수행자라도 병고의 고통은 비켜가지 않는다. 그 고통이 스님의 개인 몫으로 전가돼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조계종이 백만원력결집불사와 승려복지회를 핵심 종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이 불사가 원만히 회향돼 종단이 스님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마지막까지 스님다울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주길 발원한다.

mitra@beopbo.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