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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한 마디 닮은 시어에서 나와 삶을 보다

  • 불서
  • 입력 2019.11.04 13:36
  • 호수 1511
  • 댓글 0

‘강화 아리랑’ / 장용철 지음 / 시학

‘강화 아리랑’
‘강화 아리랑’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인생은/ 자전거 타기다// 짐을 덜어야 할 나이에도/ 바퀴가 뭉개지도록/ 또 다른 짐을 싣고/ 신발이 벗겨지도록/ 페달을 밟는다// 가자/ 저 길모퉁이 해안선 돌아/ 붉던 해도 턱 괴고 쉬는/ 차안(此岸)까지는. -‘자전거 타기’ 전문”

자전거로 인생을 말하는 시가 마치 사람의 한 생을 응축시켜 일러주는 선사의 한 마디 같다. 그래서 시는 나의 생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페달 밟기를 멈추는 순간, 삶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송환된다. 그래서 살아 있으니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삶이다. 따라서 일회성인 삶은 모든 생에게 절실하고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아직 살아 있으니 페달을 밟아야 하는 숙명으로 “차안까지” 가야 한다는 생에 대한 절박함과 절실함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갖는 마음이기에 공감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1978년 시문학 추천, 198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선 시인 장용철이 1989년 ‘서울지옥’, 1996년 ‘늙은 산’에 이어 20년 세월을 훌쩍 넘겨 흐트러졌던 시심을 모아 세 번째 시집 ‘강화 아리랑’을 펴냈다. 

절필 수준의 묵언 시간이 길었던 만큼, 묵고(默稿)를 비롯해 이끼 낀 시편들과 반도 서쪽 강화도의 노을과 마니산 단풍, 삼별초별곡 등을 노래한 ‘강화도’ ‘강화아리랑’ ‘밑’ 같은 65편의 시들이 시인의 농익은 내면을 비추고 있다.

시인은 지난 1995년 첫 방북 이후 수십여 차례에 걸쳐 남과 북을 오가며 그 간극 좁히기에 분주했고, 사회복지에 전념했었다. 그리고 안양대 산학부총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경영행정대학원 아리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5년 강화도로 이주해 ‘강화 살이’로 삶의 회향을 준비하고 있는 저자는 남북교류, 사회복지, 교육 등 몇 번의 탈피(脫皮) 끝에 비로소 23년 만에 주 전공인 시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시인으로 살지 않았던 그 긴 세월동안의 삶을 연륜으로 승화시켜 시어로 녹여냈고, 시의 깊이가 학문적 배움이 아니라 삶이 준 소중한 선물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의 크기는/ 몸집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라고/ 망망대해도 좁다고/ 허리 꼬부렸다가 펴며/ 오체투지로 피안을 향해 나아가는/ 장엄한 수좌들의 행렬. -‘새우’ 전문”

여기서 ‘망망대해’를 말하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는 마치 담수처럼 담담하고 담백한 것 역시 연륜이 배어든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차안과 피안으로 담장을 쌓은 치열한 삶과 필연적인 죽음을 ‘새우’라는 작은 생명을 통해 생의 깨달음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최준이 “사실을 디딤돌 삼아 추억, 혹은 기억으로 기둥을 세우고 현실을 지붕에 얹어놓은 한 채의 가옥과 같다”고 시집 ‘강화 아리랑’을 평했듯, 불교를 떼놓고 말할 수 없는 시인 장용철의 삶에 대한 연륜과 역사 인식, 그리고 민족의 내일을 향한 간절함이 깃든 시에서 선사의 한 마디를 듣고 ‘나’와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추억을 되짚고 지금 여기를 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은 덤이다. 9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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