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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서산 보원사지

기자명 이병두

폐허를 딛고 본래면목을 찾아가다

조선 억불정책에 사찰들 폐사
발굴·정비로 찬란한 역사 확인 
정부서 진행하며 불교계 제외
보원사 발굴 ‘상생의 길’ 사례

1918년에 찍은 서산 보원사 전경. 자세히 보면 5층 돌탑과 부도가 있고 밭 사이로 초가집 몇 채가 있어 이곳이 고려시대 화엄종을 대표하는 보원사라고 짐작하기 어렵다. 
1918년에 찍은 서산 보원사 전경. 자세히 보면 5층 돌탑과 부도가 있고 밭 사이로 초가집 몇 채가 있어 이곳이 고려시대 화엄종을 대표하는 보원사라고 짐작하기 어렵다. 

전국에 ‘사라진 절터, 폐사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부분 억불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선시대에 무겁고 고통스런 짐을 짊어지고 그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없었던 이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절이 무너지고 아예 없어지는 데에는 규모가 크든 작든 관계가 없었다. 지역 신도들과 관계가 좋아 그들의 신뢰를 얻었던 절들은 힘겨운 가운데서도 폐사까지는 이르지 않고 버텨냈다. 그러나 지역과 유리된 채 중앙 권력과 권문세가에만 의존하던 사찰들은 과거의 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어느 때 그랬는지 기록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우가 많다.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까지 국사와 왕사를 배출하거나, 그들이 은퇴한 뒤 주석했고 그래서 그들을 기리는 웅장한 부도와 비를 조성할 수 있었던 대찰(大刹)들도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다. 서울‧경기 지역의 몇 곳은 왕릉을 지키는 능침(陵寢) 사찰이 되어 왕실과 정부의 지원이 이어진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그런 행운이 모든 사찰에 주어지지는 않았다. 양주 회암사가 그랬고,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 고달사, 원주 법천사, 거돈사, 흥법사, 충주 청룡사와 서산 보원사…, 수많은 대찰들이 같은 운명을 겪었다.

다행히 나라 경제가 나아지면서 버려져있던 절터를 발굴하고 정비하는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고달사와 거돈사에 이어 보원사와 법천사 발굴이 진행되면서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절의 역사’가 드러나 우리를 감탄하게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 ‘불교와 스님’이 빠진 채 절터에 대한 발굴과 정비가 이루어져 심각한 문제를 남긴다. 정비 사업을 주관하고 관리 책임을 지게 될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에도 결국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절이 절인 이유가 무엇인가. 청주 흥덕사와 부여 정림사 등 ‘불교’가 빠진 채 복원이 이루어진 곳에서 ‘절 맛’이 나겠는가. 스님이 상주하고 그곳에서 기도와 수행, 신앙 의례와 법회가 이루어져야 온전한 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은 1918년에 찍은 서산 보원사 전경이다. 자세히 보면 5층 돌탑과 부도가 있고 밭 사이로 초가집 몇 채가 있을 뿐 ‘이곳이 고려시대 화엄종을 대표하고 스님 천명이 상주했다는 보원사’였으리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보원사도 청주 흥덕사처럼 ‘불교가 없는 문화유적’으로만 남게 되는 운명을 겪을 뻔하였다. 서산시 등 관련 기관에서는 처음부터 불교를 제외한 채 발굴‧정비를 진행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다행히 보원사 복원불사의 큰 뜻을 세운 스님이 때로는 싸우기까지 하며 협상하고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해가면서 숱한 문제를 풀어냈다. 이제 보원사는 입구 용현계곡 바위에 모셔진, ‘백제의 미소’를 넘어 ‘세계의 미소’를 전해주는 세 분 부처님들께 향촉을 공양 올리고 기도를 드리는 수호도량의 역할을 맡고, 지역주민과 불교문화가 함께 하는 중심도량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원사의 사례는 옛 절터를 다시 살려내려는 원을 세운 스님들에게 ‘중앙과 지방 정부,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상생의 길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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