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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꺄족의 멸망과 프로코피에프의 음악

기자명 김준희

동족 멸망 지켜본 붓다의 고통 같은 차가운 고요

러시아 사회 변화 담은 풍자
기교·화성으로 독보적 위치
리듬 반복 간결 속 허무함 표현
피아노 연주는 붓다 슬픔 닮아

프로코피에프의 자필(1924).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는 20세기의 음악사에서 상당히 중요하고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곡가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모더니즘이라고 부르기에는 진보적이지만, 보수적인 음악인들에게는 외면 받는 모호한 입지에 놓였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세계는 상당히 진취적이고 새로웠지만, 수 백 년 동안 계속되던 조성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경향과는 방향이 달랐다.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기교와 터질듯 한 화성의 표현력은 그만의 강렬한 색채였다.

그의 음악은 러시아의 사회적 변화에 맞춰 유행하던 사회 풍자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많이 담고 있었다. 그는 그로테스크하다는 평가 대신, ‘소극풍(burlesque)’ 또는 ‘스케르초풍’ 이라는 말로 자신의 스타일을 규정지었다. 카를로 고치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은 그의 풍자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 중 우리에게 친숙한 ‘행진곡’은 트럼펫의 팡파레에 이어지는 오보에의 비틀어진 듯한 느낌의 스타카토 선율로 시작된다. 곧이어 스네어 드럼과 마림바의 리듬위로 현악기군의 박력 있는 선율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행진에 돌입한다. 즉흥적이면서도 열정적인 감정을 잘 담고 있는 이 곡은 단호한 리듬, 방향성 강한 선율이 특히 인상적이다. 짧고 강렬한 행진곡은 18세기 후반의 베네치아의 풍자적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듯 하며, 전체적으로 프로코피에프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은 붓다를 처음 만났을 때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승가와 가까워지기를 원했다. 그는 사꺄족의 공주와 결혼을 하면 붓다와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꺄족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샤까족은 빠세나디 왕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강대국인 꼬살라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꺄족의 왕자인 마하나마가 “우리집 노비 가운데 아주 아름다운 와사바캇띠야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를 공주라고 속여 왕에게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제안했다. 사꺄족은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마하나마의 노비는 빠세나디 왕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위두다바라고 했다.

피아노 앞의 프로코피에프.

위두다바 왕자는 16세가 되었을 때 외가인 카필라왓뚜를 방문 했다. 우연히 신분의 비밀을 알게 된 그는 크게 분노하여 사꺄족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훗날 왕위를 찬탈한 위두다바왕자는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왓뚜로 향했다. 이를 안 붓다는 카필라왓뚜와 꼬살라국 사이에 있는 길에서 위두다바를 기다렸다. 붓다를 본 위두다바는 차마 전쟁을 계속하지 못하고 군대를 돌렸다.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자주 연주 되는 작품이다. 첫 곡 ‘몬테규가와 캐플렛가’는 제목에서 나타내듯 두 가문의 갈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금관악기의 강한 불협화음 코드가 수 차례 연주된 후, 호른을 위시한 금관악기의 배경 위에 등장하는 현악기의 펼침 화음은 음악적 긴장감을 담고 있다. 붓점으로 상행과 하행을 반복하며 점점 날카로워지는 선율은 마치 결투를 예견하는 것 같다. 트롬본의 묵직한 음형, 트럼펫의 강하고 날카로운 리듬, 튜바의 결연한 음색에서 프로코피에프의 폭넓은 표현력이 느껴진다. 중간 느린 부분 고음의 플루트 선율과 탬버린의 리듬은 두 가문의 화해의 무드를 짧게 묘사하는 듯 하지만 결국 결연한 분위기의 긴장감 넘치는 첫 부분이 반복하며 끝맺음한다.  

위두다바는 세 번에 걸쳐 카필라왓뚜를 침략하고자 했으나 그때마다 붓다가 가로막아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붓다는 위두다바가 군대를 이끌고 지나가는 길목의 앙상한 나무 아래 앉아 그를 기다렸다. 위두다바가 붓다에게 어찌 그늘도 들지 않는 곳에 계시냐고 여쭈었을 때,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친족의 그늘이 시원한 법이다.” 사꺄족을 지키려는 마음을 알아챈 위두다바는 붓다를 마주칠 때마다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그가 네 번째로 군대를 일으켰을 때 붓다는 더 이상 그를 막지 않았다. 

프로코피에프의 즉각적이고 선명한 표현력은 피아노 작품에서 더욱 빛난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제 6,7,8번은 일명 ‘전쟁소나타’라고 불리며 20세기 피아노 소나타 문헌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확고한 조성 아래에서 파괴적인 모더니즘과 미래지향적인 폭력성을 담은 그의 소나타 7번은 세 곡의 전쟁 소나타 중에서도 당시 소련의 전쟁 상황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베토벤으로부터 내려오는 고전적인 소나타의 구조와 형식, 리스트를 닮은 비르투오소적인 면모, 그리고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직관적인 표현력이 드러나는 이 곡은 연주자에게 테크닉과 감수성을 모두 요구하는 작품이다.

연꽃이 만개한 인도 ‘카필라왓뚜’ 유적지의 연못.

모두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나타의 첫 악장은 유니즌으로 시작된다. 반복되는 리드미컬하고 호전적인 선율은 전쟁의 치열함과 그 고통을 담고 있다. 또한 대비되는 분위기를 가진 두 번째 주제는 허무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어 마치 사꺄족의 멸망을 연상시킨다.  붓다는 사꺄족이 지은 악업은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더 이상 위두다바를 말리지 않았고, 그는 결국 대군을 이끌고 모국을 침략하여 멸망시키고 말았다. 

위두다바는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며 사왓띠성에서 큰 축하연을 열었다. 그 때 큰 폭풍우가 몰아쳐 위두다바는 꼬살라국의 군대와 함께 사라졌다. 소나타의 제 3악장은 언뜻 개선의 분위기로 느껴지지만 오히려 성급하고 맹렬했던 전투와 이후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군대와 복수심에 불탔던 위두다바의 모국 침략에 대한 그 댓가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연타리듬과 간결하지만 특징적인 화성은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허무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소나타의 두 번째 악장은 격렬한 두 악장 사이의 대비되는 악장으로 매우 차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고요함 속에 차가움도 느껴진다. 사꺄족의 멸망은 만년의 붓다의 고통이자 시련이었다. 느린 2악장의 정적인 세련된 피아니즘은 마치 붓다의 슬픔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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