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레임과 82년 김지영

기자명 심원 스님

지난 10월23일 개봉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 2주가 되기도 전에 벌써 누적 관객수 26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것은 흥행성공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열성 지지자들은 ‘육아와 함께 경력은 단절되고 심지어 맘충으로 비하되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적 실상을 잘 보여준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관람을 독려하였다. 반면, 비판자들은 성대결을 촉발하고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하여 청와대에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고, 출연 배우들의 SNS에 수많은 악플을 달며, 심지어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1점짜리 평점을 매겨 ‘평점 테러’라는 조어까지 유행시켰다. 게다가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관람후기는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남자들은 왜 이 영화를 그토록 거부하나? 영화를 보기나 한 것인가?”라는 비아냥에서부터, “한마디로 이 영화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그들 취향 쓰레기 영화다. 이런 소설과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열광하는 사람이나 모두 참된 이성을 잃은 것 같다”는 독설에 가까운 혹평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 켠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점잖은 양시론자도 있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해당 콘텐츠를 페미 쪽으로 해석하는 단체들이나 그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반대 입장이나 양쪽 다 역겹다”는 시니컬한 양비론자도 있다.

또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여성 아나운서는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많은데 여성을 온통 피해자처럼 그려놓은 것 같아 여자로서 불편했다”고 소감을 밝혔다가 악플 홍수에 시달리고, 한 정당의 청년대변인(물론 남성이다)은 “김지영이 겪는 일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또 남성도 여러 면에서 차별받는다”는 취지의 논평을 냈다가 ‘개념없다’는 비판에 몰려 사흘 만에 논평을 철회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한편의 작품이 이렇게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드물 것이다. 왜일까? ‘세상을 보는 틀’인 프레임(Frame)이,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스스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자부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할 뿐이다. ‘금강경’에서는 그런 프레임을 상(相)이라 했고, ‘반야심경’에서는 프레임을 통한 세계인식을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했다.

특정한 역사와 문화적 환경에서 형성된 사회통념이나 고정관념과 같은 프레임은 매우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다. 자신의 프레임을 잣대로 하여 상대를 핍박할 때 그 사회는 유연성을 상실하고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또 현재와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는 프레임을 선점하는 자가 싸움에서 이긴다는 진영논리 속에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프레임이 내가 미처 의식하기 전에 나에게 덧씌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덧씌워진 프레임이 활성화되면 내 마음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볼 준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고 여기지만 실은 이미 특정 프레임에 의해 유도된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되 ‘내가 본 세상이 프레임 속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나아가 이런 성찰을 통해 프레임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마주하고자 노력한다면,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되 프레임에 매몰되지는 않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가 보이고, 갈등을 유발했던 그 ‘사건’이 보일 것이다. 제작자의 의도와 관람자의 다양한 해석이 잘 어우러져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 안을 수 있다면 ‘82년생 김지영’이 조금은 더 살만한 세상을 향한 돌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