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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

기자명 이병두

출가부터 입적까지 정진했던 선승

봉암사결사로 수행분위기 일신
‘공부하다 죽어라’ 글씨가 대변
늘 미소로 대중 맞아주던 어른
서암·월하 스님 불신임 악역도

1994년 4월5일 종로 대각사에서 열린 조계종 원로회의. 사진=종단개혁기념사업회
1994년 4월5일 종로 대각사에서 열린 조계종 원로회의. 사진=종단개혁기념사업회

대한불교조계종 제10대 종정 혜암 스님에 대해 ‘이 시대의 마지막 간화선 수행자’라는 호평이 있는가하면, 스님이 현대 불교사에서 맡았던 악역(?) 때문에 ‘권승’이라는 악평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평가자들의 입장과 스님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다를 뿐 어느 쪽 주장이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스님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스님이 출가초기부터 입적할 때까지 참선수행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성철‧청담‧향곡 스님 등과 봉암사 결사를 통해 수행 분위기를 일신했던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의 일생은 오래도록 주석했던 해인사 원당암에 스님의 글씨를 새겨 세운 ‘공부하다 죽어라’는 돌기둥이 상징일 것이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한 가지 화두 집중과 근기에 따른 단계별 수행’을 강조하였다. “늙은 쥐가 쌀 궤를 한 구멍만 뚫듯 해야 합니다. 미련한 쥐나 어린 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쌀 궤를 뚫을 적에 이 짝에 뚫었다, 저 짝에 뚫었다 하는데 늙은 쥐는 쌀 궤를 많이 뚫어봤기 때문에 쌀이 나오든 말든 죽어라고 한 구멍만 뚫습니다. 화두 공부도 늙은 쥐가 쌀 궤 뚫듯이 해야 도가 깨달아집니다.”

“당장 화두가 잘 안 들리더라도 그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니 의심하지 말고 한 근을 못 들 사람은 한 근을 들려고 애쓰고, 두 근을 못 들 사람은 두 근을 들려고 애쓰는 것이 공부입니다.”

한편 참선을 하는 스님들이라면 마치 깨달음의 증명서처럼 한문으로 된 ‘오도송(悟道頌)’을 지어서 세상에 내놓는 관행이 있는데 스님은 이것을 거부했다. 스님의 남다른 성품을 보여주는 사건(?)이고, 젊은 시절에 이미 ‘세상 분위기를 따라다니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이런 일화와 함께 깡마른 얼굴이라 날카롭게 보일 수 있지만 스님은 입가에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대중을 편하게 하는 분이었다.

스님은 조계종 종정과 세 차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마지막 인연은 1999년에 종정으로 취임하여 2001년 12월31일 입적할 때까지 만 3년 동안 조계종의 법통을 상징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에 앞선 두 번의 인연은 스님으로서 맡고 싶지 않았던 악역(?) 때문에 1994년 서암 스님에 이어 4년 뒤에는 월하 스님을 종정에서 불신임하는 원로회의를 주재한 악연(惡緣)이었다.

이 사진은 1994년 4월5일 서울 종로 봉익동 대각사에서 부의장 혜암 스님 주재로 열린 원로회의 장면이다. 1993년 말 서암 스님이 종정으로 선출된 뒤 후임 의장을 선출하지 않아 공석인 상태에서 부의장 혜암 스님이 회의를 열어 불신임을 상정하고 며칠 뒤 조계사에서 열린 승려대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긴박했던 상황에 물꼬가 트일 수 있었다.

이런 악연이 이때 한 번으로 끝나면 좋았을 테지만, 1998년 종단 폭력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4년 전 자신이 주재한 원로회의에서 종정으로 추대했던 월하 스님을 다시 불신임하는 일이 스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12호 / 2019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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