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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노스님이 은행에서 목돈을 찾은 사연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11.14 17:23
  • 수정 2019.11.14 18:45
  • 호수 1513
  • 댓글 3

기고-선운사복지재단 손동인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시설 조계종 선운사복지재단에서 근무하는 손동인(66)씨가 11월13일 법보신문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손씨는 요양보호사로 7년째 노후수행마을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95세의 재덕 스님을 1년째 모시고 있다. 편집자

손동인 요양보호사와 재덕 스님.
선운사 노후수행마을의 손동인 요양보호사와 재덕 스님. 

며칠 전 제가 시봉하는 재덕 노스님 수행처에 출근했더니 스님께서 농협에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은행 업무가 9시 넘어 시작하니 조금 있다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출발 시간이 됐을 때 스님은 어느새 의복을 단정히 입으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스님을 제 차에 모시고 농협에 모셔다드렸고 스님께서는 지팡이를 짚으신 채 은행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농협 직원이 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서둘러 가보니 그 직원이 저를 보며 웬 노스님께서 이렇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다 찾으시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스님을 보니 정말 1300만원이라는 큰돈을 현금으로 찾고 계셨습니다.

노스님은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 하고 현금을 찾아 은행을 나온 뒤 곧바로 차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선운사 주지 경우 스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내심 노스님이 저런 큰돈을 어떻게 모으셨을까, 왜 갑자기 돈을 다 찾으신 걸까 궁금했습니다.

차가 선운사에 도착했을 때 주지스님은 외부 일로 출타 중이셨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종무실장님에게 “그동안 부처님 도량에서 받은 보시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으니 좋은 곳에 써달라고 주지 스님께 꼭 전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종무소를 나와 큰스님 처소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저는 전 재산을 보시한 이유를 여쭸습니다. 노스님께서는 부처님 도량에서 받은 용채는 함부로 쓸 수 없고 절에다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노스님께서 한푼 두푼 모으셨을 그간의 과정이 떠올랐고 그것을 아무런 집착 없이 보시하고 당연하게 여기시는 것을 보고 가슴속 깊이 무언가 찡하게 느껴졌습니다.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 순수하게 절에다 보시하는 노스님의 모습에서 역시 스님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노스님은 올해 세수로 95세, 법랍으로도 71세입니다. 이승보다 저승이 더 가까워오는 연세에 모든 것을 툴툴 털어내고 홀연히 마음 비운 노스님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나는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만 매몰돼 살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깊은 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손동인 요양보호사
손동인 요양보호사

다 비우고 가는 삶 부처님 도량에서 번뇌와 고뇌를 이겨가면서 생활하셨던 젊은 날의 그 수행의 길…. 한 푼이라도 남았던 게 있다면 다 보시하시고 나누는 마음으로 떠나려는 노스님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게 됩니다.

마지막 회향하는 그날까지 스님,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1513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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