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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미타부처님의 불생불멸

“말이나 즐거움 극에 달하면 곧 슬픔이 생기는 법”

비유하면 허공은 넓고 광대해 
일체의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세계 이루고 무너짐 반복해도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법 없어

중국의 대표적인 성지인 보타낙가산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든다. 순례자들이 앞사람의 등을 보면서 보타낙가산에 오르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성지인 보타낙가산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든다. 순례자들이 앞사람의 등을 보면서 보타낙가산에 오르고 있다.  

“제25칙 : 아미타부처님 대자비원력에 의지해 불생불멸의 즐거움을 누린다.”

세간의 모든 것, 우리의 몸과 현재 머물고 있는 세계는 모두 중생의 생멸심에서 비롯한다. 중생이 함께 지은 업으로 감득한 세계와 자신이 지은 업으로 감득한 근신은 모두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어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세계에는 곧 성주괴공이 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말이나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은 이를 가리킨다. 인지에서 이미 생멸이 있어 과지에서도 생멸이 없을 수 없다. 서방극락세계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자심이 본래 갖춘 불성을 철저히 증득하신 후 마음을 따라 나타내신 성품에 맞게 장엄한 불가사의한 세계이므로 그 즐거움이 다하는 때가 없다. 비유하면 허공이 넓고 광대하여 일체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세계가 수없이 이루어지고 무너져도 허공은 끝내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는 것과 같다. 

극락세계의 즐거움은 볼 수 없기에 세간의 즐거움으로써 극락세계의 즐거움을 논설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허공을 전부 볼 수 없을지라도 천지간의 허공이 바뀐 것을 본적이 있는가?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염불하여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라”고 가르치신 목적은 아미타 부처님의 대자비원력에 의지하여 함께 이 불생불멸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데 있다. 극락세계에 가면 몸이 연꽃에서 화생하여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없고 극락세계는 아미타 부처님의 성품에 맞게 공덕이 나타난 세계이므로 성주괴공의 변화가 없다. 이러한 이치로 비록 성인도 모르는 것이 있거늘 하물며 우리들 범부가 세간의 생멸법으로써 그것을 판단하여 의심하겠는가? 

“제26칙 : 정토법문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빨리 강구해야 한다.”

나머지 법문의 경우 작은 법이면 큰 근기는 닦을 필요가 없고 큰 법이면 작은 근기는 닦을 수 없다. 이 정토법문만은 세 근기를 두루 가피하고 이근 둔근을 전부 거두어들인다. 위로는 관세음, 대세지, 문수, 보현 등 여러 대보살들도 그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고 아래로는 오역 십악의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지은 사람도 그 가운데 참여할 수 있다. 여래께서 이 법을 열지 않았다면 말세 중생은 눈앞의 생에 삶을 끝맺고 죽음을 벗어나고자 하여도 곧 절대로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토법문이 이처럼 넓고 크며 그 수행방법 또한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까닭에 만약 전생에 정토에 선근을 심은 사람이 아니라면 곧 의심 없이 확신하기가 매우 어렵다. 범부들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성문 연각의 이승조차도 많이 의심한다. 나아가 이승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십지 아래 권위보살 조차도 간혹 의심한다. 오직 홀로 초지이상의 대승보살이라야 철저히 깨치고 의심 없이 확신할 수 있다. 확실히 이 법문은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아 전체 그대로 부처님의 경계이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이라야 구경까지 알 수 있나니, 일반인의 지혜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법문에 신심을 깊이 낼 수 있다면 비록 번뇌에 묶인 범부일지라도 그의 종성은 이미 이승을 훨씬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 명호를 집지하여 범부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다에 뛰어드는 까닭에 은밀히 부처님의 지혜와 통하고 미묘한 도에 계합할 수 있다. 정토의 수행법을 분명히 강설할 적에 만약 일체제법은 자력에 기대어 생사를 완전히 벗어나기가 곤란하고 이 법문은 불력에 기대어 왕생하기가 쉽다고 간략히 진술하지 않는다면 학인은 법을 의심하지 않고 곧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으로 인해 장애를 이루어 닦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닦아도 근본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이로써 정토법문은 수행에 깊이 들어가 절정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 ‘믿음’ 한 글자를 긴급히 강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27칙 : 아미타부처님은 법계에 두루 감득하고 법계에 두루 응현하신다.”

어떤 이가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극락세계에 안온히 머물러 계시는데 시방세계는 무량무변하고 하나의 세계에서 염불하는 중생도 무량무변하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대체 자기 한 몸으로 일시에 시방 무량무변한 세계의 일체 염불중생을 두루 접인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답하기를 “어떻게 범부의 지견으로 부처님의 경계를 추측하려는가? 잠깐 한 가지 비유로 당신의 의심을 제거해 보겠다. 달 하나가 천공에 걸려 지상의 모든 하천에 그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달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천상에는 비록 달 하나가 있을 뿐이지만, 큰 바다이든 큰 강이든, 큰 하천이든 작은 시냇물이든 모두 밝은 달이 비칠 것이다. 심지어 국자 하나 물 한 방울에도 각각 전체 달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게다가 한 사람이 강물에 비친 달을 보면 달이 그 사람과 마주하고 백천만 억 명이 백천만 억 장소에서 보면 각각의 달이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할 것이다. 백천만억 명이 각자 동서남북으로 걸어가면 달도 걸어가는 곳으로 언제나 그 사람을 따라가니, 어느 곳으로 가든 상관없고 멀든지 가깝든지 모두 같다. 만약 백천만억 명이 각자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달도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며 그 사람을 향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어 “오직 물이 맑고 고요해야 달이 나타나고 물이 혼탁하고 출렁이면 볼 수 없을 것이다. 달은 아무런 취사선택이 없어 출현하지 않은 원인은 물이 혼탁하고 세차게 흘러서 그것의 그림자가 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물과 같고 아미타부처님은 달과 같다. 중생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고서 지성으로 부처님을 감득하면 물이 맑아 달이 나타나듯 부처님께서 응현하신다. 만약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정성이 지극하지 않아 탐진치와 상응하고 부처님과 등지면 물이 탁하고 출렁이면 달이 비록 만물을 버리지 않고 응당 비출지라도 그림자가 물에 나타날 수 없음과 같다. 달과 같은 세간의 색법조차도 이와 같이 미묘하거늘 하물며 아미타부처님께서 번뇌와 혹업이 다 사라져 지혜를 구족하고, 마음은 태허를 감싸고 심량이 일체법계를 두루 받아들임이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화엄경’에 이르시길 “부처님의 법신은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나고,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지만 언제나 이 보리좌에 계시느니라”라고 하셨다. 

법계에 두루 감득하고 법계에 두루 응현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실제로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을 움직인 적이 없지만 오고감의 상이 있어 인연이 무르익은 중생에게 그가 와서 접인하여 극락에 왕생하는 모습을 보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하나둘 아니라서 대의를 설명하여 바른 믿음을 생기게 하였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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