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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침엔 부처, 저녁엔 스승을 만나다 ①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자비와 친절로 대하면 지금 이곳이 불국정토”

북촌마을에 있었던 예전 숙소
바로 앞에 자비손한의원 있어
주말엔 골목끝 카페서 차한잔
슈퍼 노부부에게선 정감 느껴
일상곳곳에 부처와 스승 있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예전에 살던 숙소는 북촌마을 인근의 계동(桂洞)이라는 곳이었다. 아마도 계수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계수나무 아래에는 월정(月井)이란 우물이 지금도 남아있어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참으로 운치가 있었으리라. 아직까지 한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창을 열면 기와지붕이 고풍스럽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다보는 인왕산 너머로 지는 저녁놀과 석양 또한 장관인지라 계동 숙소는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곳으로 자리한다. 특히나 일제 치하에서 북촌을 지켜낸 정세권 선생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숙소를 나오면 바로 앞 건물이 ‘자비손 한의원’인데 삼부자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석주 노스님께서 83세에 써 주신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 휘호가 인상적이다. 삼부자와 어머님이 함께 운영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들 모두가 내겐 부처와도 같다.

그 맞은편의 정수복이란 이의 집앞에는 작은 조각공원이 자리한다. 주인은 아마 시인인 듯 자작시비와 작은 정원이 소담스럽게 자리한다. 이 삭막한 세상에 이렇듯 꾸며 놓은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골목 끝에는 ‘공드리’라는 카페가 있어 주말이면 차 한 잔을 마시며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인은 예술가처럼 수염을 멋지게 기른 채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젊은 부부가 카페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내가 자주 가는 슈퍼마켓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동네 사람들의 진솔한 삶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부모님처럼 잘 대해 주시는지라 고맙고 감사했는데 지금은 장사를 접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근처의 작은 편의점은 점원이 상냥하고 정이 많아 자주 찾곤 한다. 특히 중고생들이 자주 찾는 곳인지라 언제나 싱그럽고 활기찬 모습이다. 앞머리에 헤어 롤을 한 채 엄청 매운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마치 영산회상을 방불케 한다.

장원식당은 정목 스님 신도인 보살님과 너무나 순박한 남편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다 이겨내고 아이를 키우면서 남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불보살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가끔 손님이 오면 들리는 ‘화동옥’이란 음식점 주인 아저씨의 자비와 친절에도 늘 감동하곤 한다.

사거리에서 가끔 마주치는 재동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소녀는 새침한 얼굴에 곱게 땋은 머리를 하고는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에 간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과 밝은 미소를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현대건설 앞의 컵밥 집은 중년의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맛집인지라 단골이 되었다. 매양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컵밥이 든든하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한때는 좋은 직장을 다녔을텐데 지금은 작은 컵밥집을 창업해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내겐 친형이나 형수님처럼 생각되어 자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 골목에는 ‘미스김 라일락’ 꽃의 사연을 적어 놓은 꽃집과 멋진 양복을 입고 밖에 나와 미소 짓는 양복점 아저씨,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 사진을 선뜻 내게 선물한 사진관 집 아저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도 손수 밀가루 반죽을 밟으며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 주시는 ‘북촌 칼국수’ 집 노보살님들과 맛있는 해물순두부가 일품인 ‘콩사랑’ 순두부집 후덕한 사장부부도 인상적이다. 개업한지 70여년이 넘는 ‘만수옥’ 설렁탕집 주인 할머니는 아예 전설이시다.

가끔 홀로 스틱을 들고 아스팔트를 두드리며 직장으로 향하는 맹인 아가씨와 마주친다. 어디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관세음보살의 현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 손을 잡고 부축하여 목적지까지 모셔다 주거나 카페에서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그리 못한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가 있다면’이란 수필을 읽으면 나는 그녀가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지체장애를 앓는 아이를 업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자못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 아비의 마음이 바로 불보살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총무원에도 불보살님과 같은 이가 존재한다. 재무부 시설팀 소속의 종무원들이 그들이시다. 특히 수위 처사님과 환경미화 혹은 빨래 보살님들은 어렵고 힘든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듯이 하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항상 밝고 환한 미소로 함께 하시는지라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조계사 앞마당 한 켠에 계신 화주 보살님과 ‘승소’ 공양간의 자원봉사 보살님들 또한 불보살님과 같으시다. 

조계사 앞거리에서 건어물을 파시는 노보살님은 점심은 조계사 공양간에서 드시는데 대웅전 법당에 들려 먼저 부처님께 정성스레 삼배를 드리신다. 그 마음이 참 곱고 어여쁘시기만 하다. 아무리 바빠도 스님 네가 지나가면 곧바로 일어나 극진하게 절을 하신다. 아마도 짐짓 건어물 파는 노파로 현현한 부처나 보살님이 아니실는지 모르겠다.

우정국 공원과 조계사 처마 밑에서 노숙을 하시는 분들, 혹은 지하철의 맹인가수 혹은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들 중에도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계실게다. 아니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길에 만나는 이름없는 소시민들 모두가 누군가의 부처나 선지식이자 자랑스런 부모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춘원 이광수의 ‘육바라밀’이란 시의 “인제 알았노라 /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라는 마지막 구절로 찬탄한다.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빌어 묻고 싶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랑 이었느냐” 

저 먼 곳의 정토나 극락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우리 주위의 부처를 자비와 친절로 대한다면 그곳이 바로 불국정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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