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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리풋타·목갈라나의 열반과 슬픔의 음악

기자명 김준희

사랑하는 가족 잃은 슬픔, 아름다운 선율로 승화

부처님, 두 상수 제자들 죽음에
슬픔과 허전함 진속하게 토로
모차르트·멘델스존 등 작곡가 
슬픔의 감정 작곡으로 담아내 

사리풋타의 사리탑이 있는 나란다불교대학 전경.

붓다는 만년에 몇 가지 큰 아픔을 겪었다. 데와닷따의 반역과 사꺄족의 멸망, 그리고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의 열반이 그것이다. 붓다의 두 상수제자인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승가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으며 붓다를 도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불교는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 둘은 붓다보다 연상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붓다를 존경했다.

사리풋타는 자신의 열반을 예견하고 병약해진 몸을 이끌고 붓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 뒤, 고향인 날라까로 돌아가 자신이 태어났던 벽돌집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붓다는 사왓티에 탑을 건립하고 그의 유해를 안치하도록 했다. 먼저 입적한 제자의 유골을 받아든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혜롭고 총명했다. 재주도 많았지만 욕심이 적어 만족하는 법을 알았고 늘 용감했다. 사리풋타를 잃으니 나는 가지가 부러진 고목과 같구나.” 곧이어 목갈라나마저 열반에 들었고 붓다는 그를 위해 라가자하 시내에 탑을 새로 지었다. 이들의 열반은 아난다를 비롯한 다른 많은 수행자들에게 큰 슬픔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유년시절 연주여행으로 인해 가족의 따뜻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유럽 전역을 다니며 연주와 작곡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어린 천재에게 어머니의 빈 공간은 매우 컸다. 모차르트는 1777년,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목적지는 그가 7세 때 처음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파리였다. 그러나 십수 년이 지나 방문한 파리는 모차르트에게 냉담했다. 파리의 청중들은 신동 모차르트는 사랑했지만 원숙미 넘치는 모차르트에게는 어쩐 일인지 차가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모차르트의 어머니는 객지에서 병을 얻게 된다. 파리에서 환영받지 못한 모차르트는 시들해져버린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분주하게 작품을 위촉받고 연주를 하느라 어머니를 돌볼 틈이 없었다. 결국 아들과의 첫 연주여행을 떠난 이듬해, 모차르트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숨을 거두게 된다. 오로지 음악만을 알았던 철부지 천재 모차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 순간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을 아버지를 생각해 ‘어머니가 위독하다’라는 편지를 썼고, 친구에게는 ‘슬퍼할 아버지를 잘 위로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의 사망을 ‘위독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작곡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 피아노 소나타 a단조 K.310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단 두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볍고 밝은 느낌을 담고 있는 장조의 작품들이다. 첫 악장은 눈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의 선율로 시작한다. 마치 어머니를 고향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표현된 것 같은 왼손의 반주 음형은 말발굽소리를 연상시킨다. 전반적으로 슬픔과 눈물의 정서가 느껴지는 첫 악장은 눈물을 꾹 참고 파리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성숙한 음악인의 모습도 언뜻 느껴진다.

두 번째 느린 악장은 담담한 회상과도 같다. 어머니와의 얼마되지 않을 추억,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은 침착하고 따뜻한 악장이다. 기억의 단편들로 채워진 것만 같은 제 2악장은 훌륭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모차르트의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 형식의 마지막 악장은 도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적이다. 어쩌면 남겨진 자가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펠릭스 멘델스존은 불행과 가난으로 점철된 다른 많은 작곡가들에 비해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기운과 고상한 기품이 넘치는 작품들을 작곡했다. 고전주의적 질서와 형식 위에 특유의 안정감 넘치는 낭만주의적 음악을 구현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안정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담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다양한 문학, 언어, 역사, 스포츠 등의 짜여진 교육으로 가득 찼고, 언제나 누나 파니 멘델스존과 함께였다. 

동생 펠릭스 이상으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파니는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 모두 능숙했다. 그녀는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서 전문 음악가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살롱음악회에서 간간히 연주를 하며 동생의 영원한 음악적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847년 봄, 베를린의 일요음악회에서 연주 도중 손가락에 마비가 와 쓰러졌던 파니는 그날 밤 생을 마감했다. 이미 누나의 장례식과 추도식을 마친 뒤 비보를 접한 멘델스존은 크게 울음을 터뜨린 후 기절해버렸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다.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파니의 부재는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현악사중주 f단조 Op.80은 멘델스존의 누나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곡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던 안정감과 평온함은 전혀 찾을 수 없다.

펠릭스 멘델스존과 그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

불안하고 격정적인 첫 악장의 트레몰로와 발작과도 같이 몰아대는 듯한 선율은 어떤 위로도 멘델스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세련되고 우아함으로 대표되는 그의 스케르초와는 완전히 다른 두 번째 악장은 들쑥날쑥한 반음계 선율과 혼란스러운 리듬으로 가득 차 있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멘델스존의 다른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작곡가이자 평론가인 모셸레스가 언급한 ‘고통스러운 감정의 동요’가 매우 적절하게 느껴진다. 또한 느린 3악장 후반부의 고통스러운 듯한 오스티나토와도 같은 베이스의 반복음은 멘델스존이 이 곡을 통해 견딜 수 없는 격정적인 슬픔의 감정을 억지로 눌러 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홀로 고통스러워 하네 / 이 고통은 끝나지 않으리라 / 나는 너로부터, 너는 나로부터 /아아 사랑하는 이여, 헤어져야 했으니.” 멘델스존의 마지막 작품인 ‘옛 독일의 봄노래 Altdeutsches Frühlingslied’ 가사의 끝부분이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유, 열정으로 단단한 유대감을 주었던 누나의 사망 몇 달 뒤, 그녀의 베를린 집을 방문하고 나서 쓴 멘델스존의 노래는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멘델스존은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의 이별 후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끼던 두 제자를 떠나보낸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없는 이 모임은 나에게는 텅 빈 것과 같구나. 이전에는 그들이 있어 항상 가득 찬 느낌이었는데.” 깨달은 자의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13호 / 2019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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