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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살인사건 희생자·유가족·지역민 아픔 감싼 법석

  • 교계
  • 입력 2019.11.23 16:14
  • 수정 2019.11.23 23:27
  • 호수 1515
  • 댓글 0

화성 용주사, 11월23일 합동위령재
희생자 극락왕생·안전한 사회 발원
유가족·불자·지역민 등 200여명 참석

“화성연쇄살인으로 후배와 아는 언니를 잃었어요. 저와 비슷한 나이였으니,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함께할 수 있었겠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아픔입니다.”

화성 지역에서 자랐다는 김영미(44, 가명)씨는 화성 용주사 ‘화성살인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재’가 봉행되는 내내 법당 한 켠에 앉아 통곡했다. 어린시절 함께했던 두 명의 피해자를 아프게 떠나보낸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새롭게 밝혀진 피의자가 같은 동네 오빠라는 충격도 컸다. 그나마 지역사찰인 용주사에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이날 법석이 적지 않은 위안이 됐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주지 성법 스님)가 11월23일 경내 관음전에서 봉행한 ‘화성살인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재’는 피해자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법석이었다. 동시에 상처로 물든 화성 지역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보듬는 자리이기도 했다.

위령재는 오전 9시30분 인로왕보살 등 제불보살을 법단에 모시는 시련의식과 천도의식을 고하는 대령, 영가를 정화하는 관욕의식으로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의 명패가 못진 영단에 절을 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화성사건 피해자인 실종 초등학생 유가족은 “부모가 자식 영단에 절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지난 세월 딸이 산 줄도, 죽은 줄도 모르고 살았고 우리 가족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들, 그 경찰들이 우리를 두 번 죽인 것”이라며 “경찰을 못 믿으면 이제 누구를 믿고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하나. 당시 수사담당자를 제대로 조사해 처벌해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용주사 효행합창단이 ‘내 영혼이 바람되어’ ‘가야지’ 등 추모곡을 음성공양했다. 추모곡이 흐르는 동안 곳곳에서 참석자들은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쳤다.

용주사 주지 성법 스님은 추도법문에서 “33년간 묻혀있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진 것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원한과 고통의 기억까지 풀리는 것은 아니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그분들의 한 맺힌 마음을 풀어줘야 비로소 끝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일이기에 지역과 깊은 인연이 있는 용주사가 그 한과 아픔을 풀어주고자 오늘 법석을 마련했다”며 “위령의식이 억울하게 희생된 고혼의 극락왕생은 물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유가족과 상처입은 지역민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위령재에는 성법 스님을 비롯해 용주사 선덕 성덕, 성목, 성월(박물관장), 무문 스님과 2교구 중앙선원 및 말사주지 스님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 권칠승 화성시 국회의원, 김인순 경기도의회 의원, 윤후의 화성서부경찰서장 등이 참석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피해자와 유가족에 깊은 애도와 추모,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뒤늦게 범인이 밝혀진데 대해 사과를 전하며 크나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수사본부에서 모든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수사를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며 당시 수사에서 과오가 있었다면 그 역시 명확히 밝히고 처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유가족과 스님들, 내빈, 불자들이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헌화한데 이어 본격적인 천도의식이 시작됐다. 의식은 도량 수호를 위한 신중작법과 영가의 한을 위로하는 살풀이, ‘천수경’ 봉독 및 바라·법고 등으로 진행된 상단의식, 가르침을 전하는 화청의식, 일체 고혼에 법식을 베풀고 경전을 읽어주며 천도하는 시식·지전무에 이어 봉송의식으로 회향했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간 경기도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4개 읍면에서 10대 초등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했던 미제사건이다. 33년이 지난 올 9월 당시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유력 용의자의 DNA가 일치한 사실이 확인됐고 자백으로 이어지면서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유력용의자가 살인사건 발생지역에 살았고 현재 교도소에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줬다.

화성=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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