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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종무원으로 산다는 것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11.25 11:25
  • 수정 2019.11.26 08:38
  • 호수 1514
  • 댓글 3

낮은 임금에 과도한 근무시간
종무원 당당해야 사찰도 활기
사찰 종무원 복지는 종단과제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이 사찰에 거주하며 고정 급여를 받고 청소와 정리 등 업무를 하는 이들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5년부터 불교관련 법인에서 운영하는 사찰에서 생활하던 A씨가 지난해 5월 일방적인 ‘퇴실 통보’를 받았고, 이에 A씨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법인 측은 그가 사찰의 처사로 기거하면서 사찰 업무를 도왔을 뿐이며, 그의 업무는 자율적인 봉사활동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에 대한 구체적인 근무내용과 근무장소를 지정해줬고 근무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정해져 있었으며, 이들은 매일 아침 출근기록부에 출근시간을 기재하고 서명을 했다”고 적시한 뒤 “해당 법인은 처사들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고, 처사들은 법인이 정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구속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패소를 판결했다.

이번 재판 결과는 사찰에서 일하는 분들도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이며 그에 맞는 처우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간접적이나마 사찰 종무원들의 열악한 상황도 가늠케 한다. 어떤 이들은 사찰에서 일한다고 하면 수행도 하고 차도 마시며 느긋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5일제는 고사하고 연월차 휴일 사용도 쉽지 않다. 하루 근무시간이 12시간을 넘기는 일들이 많고, 음력 초하루를 비롯해 주말법회, 신행단체 모임, 각종 사찰 행사가 즐비한 도시 사찰 경우 일요일과 국경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것이 종무원들의 일상이다.

몇 해 전 조계종 총무원이 24개 교구본사와 직영사찰, 연 예산 3억 이상의 직할 교구 공찰 44개 사찰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1094명의 평균 연봉이 1571만원이었다. 또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인 23개 사찰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그나마 행정직만 적용됐을 뿐 기능직이 배제된 곳도 14개 사찰이었다.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새벽부터 밤까지 격무에 시달리는 종무원들의 현실인 셈이다. 사회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으면서 열정만을 요구하는 것을 ‘열정페이’라고 한다면, 종무원들 사이에서는 처우는 개선하지 않고 신앙심만을 요구한다는 ‘신심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이유다.

불완전한 신분 보장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어느 날 갑자기 ‘퇴실 통보’를 받을지 알 수 없을뿐더러 일단 통보를 받으면 재가 종무원으로서 견뎌내기 힘들다. ‘주지스님이 바뀔 때면 공양간 수저까지 가져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사찰에 새로운 주지스님이 오면 종무원까지 바뀌는 일들이 여전히 잦다. 무엇보다 부처님 도량인 절에서 스님이나 신도들로부터 간혹 받는 하대와 냉대는 가슴 속 깊은 상처를 남긴다. 몇몇 사찰을 제외하고는 사찰 종무원의 평균 근속년수가 채 2년이 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사찰은 기도와 의례를 넘어 문화와 복지 전반에서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것은 사찰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한해가 다르게 출가자가 줄어들고 있기에 재가종무원의 역할과 역량은 더욱 절실한 문제다. 종무원이 당당하지 못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면 업무가 원활이 이뤄질리 만무하다. 사찰에서는 사무보조, 청소 등 단순 업무는 신도회나 자원봉사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종무원은 전문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종단에서도 승려복지 뿐 아니라 사찰 종무원들의 신분 및 생활보장이 이뤄질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를 강구해야 한다.

이재형 국장

사찰 종무원들이 신심과 열정,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일해야 사찰이 살고 활기가 넘친다. 그 시작은 종무원이 단순 노무자가 아니라 사찰 운영의 파트너라는 인식에서 비롯될 것이다.

mitra@beopbo.com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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