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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수경 스님의 여강선원 개원

기자명 이병두

함께 살아온 생명의 아픔과 함께하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정비 강행
수경 스님, 생명 죽이는 일 반대
문수 스님 소신공양 망연자실
수경 스님 다시 뵐 수 있기를

2010년 3월13일 여강선원 개원 현판식 후 발원문을 소지하는 수경 스님.
2010년 3월13일 여강선원 개원 현판식 후 발원문을 소지하는 수경 스님.

이명박 정권은 출범과 동시에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을 대상으로 ‘정비사업’을 강행했다. ‘4대강 정비사업’은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권은 이런 반대를 애써 무시하며 사업을 강행하려 했고 이에 맞서 환경단체와 종교계에서는 이 사업이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며 원천 봉쇄에 나섰다. 토론회가 열리고, 정부청사 앞에서의 시위는 물론, 공사 현장의 굴삭기 앞에서 드러눕는 물리적 저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게는 이 모든 활동이 ‘쓸 데 없는 짓’으로 비쳤고, ‘소의 귀에 경 읽기[牛耳讀經]’에 지나지 않았다.

종교계 환경운동의 상징이었던 수경 스님의 고민이 깊어갔다. 반대 목소리를 아무리 크게 낸들 눈도 깜짝하지 않는 정권 앞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닥쳐왔을 것이다. 스님은 이에 앞서 서해안 새만금 갯벌을 망가뜨리는 간척사업을 막아보려고 수백리 길을 3보일배로 걸으며 ‘생명 살리기’에 나섰고, 사패산을 뚫는 터널공사를 온몸을 바쳐 저지하려고 애썼으며, 무엇보다도 불교계 시민운동의 구심점이 된 불교환경연대를 창립해 기초를 닦은 상징적인 분이었다.

‘정비를 명분으로 내세운 파괴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이어가던 스님은 뜻 맞는 이들과 강을 따라 걸으며 ‘왜 강이 소중한지?’ 사색하고, 그 강물과 함께 살아온 생명들의 아픔을 느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출발은 경기도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가에 자그마한 컨테이너를 놓고 거기에 ‘강물처럼’이라는 뜻의 ‘여강(如江)선원’ 개원이었다. 이 사진은 2010년 3월13일 여강선원 현판식을 마치고 발원문을 태워 날리는 스님의 모습인데, 굳은 얼굴 표정에서 스님의 결연한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발원문 소지(燒紙) 후 참석자들과 함께 여강(驪江)변을 걷는 스님 일행의 마음이 아주 무거웠을 것이다.

‘토건 정권’이라는 평을 받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우려했던 대로 4대강 정비사업을 밀어붙였고, 그에 따라 저항의 강도도 거세졌다. 여강선원 개원 석달 뒤인 5월31일 오후에는 경북 군위 지보사의 문수 스님이 유서와 가사에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라는 내용을 써놓은 뒤 온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소신공양으로 이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누구보다도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수경 스님은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하고 복받치는 설움을 삼키며 눈물을 흘렸다.

“환경운동가라는 이 명예가 권력이 되지는 않았는지,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2010년 봄 여강선원으로 찾아온 정부 고위관계자에게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수경 스님이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여러 해가 되었다. 10년 전 스님의 말씀대로 ‘돌아보는 과정’이 아닐까. 스님이 그 ‘돌아보기’를 마친 뒤에는 ‘큰 어른’ 수경 스님의 환한 얼굴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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