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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자유의지와 결정 근거

과학이 발달하면 신이 죽었듯 자유의지도 죽을 것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은 착각
뇌과학·뇌신경과학 더 발달하면
‘더 미세한’ 인과관계 밝혀지고
자유의지는 변두리로 밀려날 것

자유의지로 내리는 결정이, 아무 근거가 없이 내리는 결정이라면, 기계가 내리는 결정과 뭐가 다를까? 주사위를 던져 내리는 결정과 뭐가 다를까? 거북이 등을 구워 얻은 문양을 보고 내리는 결정과 뭐가 다를까?

여러 선택지 중에서 특정한 것에 더 선호도를 주는 것이 자유의지라면, 그것도 근거가 없이 그리하는 것이라면, 자유의지란 기계나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혹은, 90프로는 근거를 가지고 하고, 나머지 10프로는 근거가 없이 하는 것이 자유의지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10프로는 무작위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90프로는 결정되어 있으므로 나머지 10프로는 무작위로 해도 좋다는 말일까? 예컨대, 집을 지을 때 기둥으로 쓸 무게를 충분히 견딜 후보를 10개 정도 골라놓았다면, 이제 그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기계나 주사위에 맡겨도 좋다는 것일까? 이렇게 결정한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과 어떻게 다를까? (사람의 뇌에 당사자 몰래 random number generator[난수 제조기]를 심고, 그걸로 하여금 서로 경쟁하는 피선택 후보들 중에서 어느 걸 선택할지 마지막 결정을 내리게 하면, 당사자는 그 결정을 자기가 자유의지에 의해 내린 것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자유의지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인간이 결정을 내릴 때 작용하는 요건은 수없이 많을지 모른다. 그중 많은 결정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그 요인들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그래서 그걸, 인과관계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과관계가 아닌 자유의지로 파악한 것일 수 있다. 고대인들이 ‘습한 데서 저절로 벌레가 나온다’고 생각한 것과 같다. 현미경이 발명되어 관찰이 가능하게 되면서 작은 곤충 알뿐 아니라 미생물까지도 발견하게 되었다. 

버섯에게도 정자가 있고 스스로 움직여 난자에게 다가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자유의지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은 자유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놀랍게도 그 안에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듯한 기관이 있는 것이다.

이 정자는 버섯일까? 아니면 독립된 생명체일까? 아마 ‘생명체’라는 같은 단어를 이용하는 것이 모든 혼란의 원인일지 모른다. 아니면 ‘같다’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 단어는 정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 ‘같다’라는 말에는 ‘문자 그대로 같다’는 뜻도 있지만, 기능이 같다는 뜻도 있고 형태가 같다는 뜻도 있다. 이 모든 게 혼동되어 한 단어 ‘같다’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뿐만이 아니라 박테리아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병은 신이나 죄의 결과가 아니라, 즉 신이나 우주가 인간의 죄를 처벌하려고 내리는 벌이 아니라,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의 생명활동 결과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제 병에 걸려도, 치료약과 치료법이 존재하는 한, 결코 신에게 치병(治病)을 위해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과학, 특히 뇌과학과 뇌신경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지금 우리가 자유의지의 작용이라 간주하는 게 사실은 ‘더 미세한’ 인과관계의 작용이라는 게 밝혀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작용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용할 것이다. 그럼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실은, 이미, 많은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도보(徒步)나 운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일들은, 무수한 시각정보와 수많은 근육과 평형감각을 이용하지만, 결코 의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의식적으로 할 수도 없다. 걸어갈 때 앞에 있는 움푹 파인 곳을 없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발이 쿵하고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발을 준비하던 걸,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전에는 신의 섭리(攝理 자유의지 뜻) 또는 작용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신이 없이도 설명되면서 신이 밀려나듯이, 점점 더 무한히 먼 경계선으로 밀려나듯이, 자유의지도 밀려날 것이다. 점점 더 멀리, 무한히 멀리. 영토를 빼앗기고 변두리와 황무지를 헤맬 것이다. 신이 죽었듯이 자유의지도 죽을 것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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